`핵분열' `한시적 동거'..여정 험난

정계개편을 둘러싼 열린우리당의 내분과 당청 갈등이 극한상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결별을 향해 가는 우리당의 진로가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당내 통합신당파와 친노파의 갈등 양상만 보면 금방이라도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을 것처럼 보이지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과연 탈당을 결행할 것인 지, 결별을 한다면 누가 짐을 싸고 나갈 것인지, 전당대회는 개최될 것인 지, 제3지대 신당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지 등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변수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상황을 볼 때 여당내에 `앉아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통합신당파의 에너지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연말이나 내년 2월 전당대회를 계기로 결별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제기하며 한나라당에 대연정의 손길을 내미는 승부수를 던질 경우, 여당이 생각하는 정계개편의 시간표가 완전히 흐트러지면서 정국구도 역시 큰 틀의 변화를 맞게 될 수도 있다.

또 여권 내부갈등으로 통합신당 추진을 위한 동력과 명분이 소진돼버리면 하는 수 없이 전당대회를 통해 갈등을 봉합하고 한시적인 동거 상태를 유지하면서 한나라당과 여타 정치세력의 대선경쟁 구도가 확정된 이후 막판에 독자후보 선출이나 선거 연대 등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당의 핵분열 = 여당 내에서는 이미 `합리적인 결별론', `합의 이혼론' 등 결별을 기정사실화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당 지도부는 지난 1일 심야회동을 통해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귀국하는 오는 13일 이후 의원총회를 열어 정계개편의 방향과 일정을 제시하기로 했다.

당 지도부가 내놓을 카드의 윤곽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이달 중순께 열릴 여당 의총이 `빅뱅'의 신호탄이 되는 셈이다.

우리당이 끝내 결별을 택할 경우 노 대통령의 탈당 여부와 여당내 세력중에서 어느 쪽이 탈당할 것인지가 가장 관심사가 될 전망이며, 결별의 형식이 `전당대회'가 될 것인 지 아니면 전대없이 `통합신당 수임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될 지도 관심사다.

노 대통령이 탈당을 선택하고 친노 그룹이 동반 탈당할 것이라는 것은 성급한 예단인 것 같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깃발에 강하게 집착하고 있는 한, 친노그룹은 노 대통령의 탈당 여부와 무관하게 당내투쟁을 벌이면서 전당대회를 통해 당의 진로를 결정하자고 요구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다.

통합신당파 역시 100여명에 달한다고 하지만 쉽사리 탈당을 결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신당을 `지역당'으로 평가절하하고 나선 마당에 국민이 납득할 만한 신당 창당의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 큰 숙제이고, 김근태(金槿泰) 의장과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의 양대 계파가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통합신당파와 친노그룹 양쪽에 공통된 고민으로는 당을 떠날 경우 `탈당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안게 된다는 점과 현실적으로는 탈당을 할 경우 50억원 안팎의 국고보조금을 포기해야 하는데 막대한 창당자금을 감당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문제가 있다.

친노진영이 열린우리당의 깃발을 사수하기로 결심하고 나설 경우 결국은 통합신당파가 당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현 지도부가 전당대회 표 대결을 통하든 아니면 전대없이 통합신당 수임기구를 설치해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리는 방식을 택하든 친노진영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주먹다짐을 각오하지 않고는 친노그룹의 탈당을 이끌어내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기간당원제를 폐지했다고는 하지만 전당대회를 치를 경우 친노세력 가운데 최소한 1-2명은 새지도부에 포진할 가능성이 있고 이들이 우리당의 해체를 결사반대하면 `아름다운 결별'은 환상에 불과하다.

또 전대없이 통합수임기구를 구성하더라도 친노진영이 열성당원들을 동원해 저지 활동에 나선다면 우리당 해체와 통합신당 창당이라는 의사결정이 순조롭게 이뤄질 리 만무하다.

지난 2003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서도 현 여당 창당세력은 `이미경 머리채' 사건으로 상징되는 민주당 사수파의 완강한 저지에 막혀 민주당을 탈당하고 별도 교섭단체를 구성한 뒤 신당을 만드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원만한 결별의 가능성도 없지 않다.

친노그룹인 참여정치실천연대 대표인 김형주(金炯柱) 의원이 "당내에서 서로 총을 쏠 게 아니라 합리적으로 결별하는 수순을 밟고, 나중에 연대나 재통합을 모색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고 건(高 建) 전 총리의 지지율 추이와 최근 민주당의 심상찮은 행보 역시 큰 변수다.

통합신당파가 탈당하는 것은 결국 `제3지대'에 새로운 당을 만들어 흩어진 지지세력을 재결집하는 것이 목적인데 최근 고 전 총리의 지지율 하락과 보수적 행보로 인해 회의적 시각이 만만치 않고, 민주당 역시 한화갑(韓和甲) 대표를 중심으로 `독자생존론'이 나오면서 통합을 대선 목전의 과제로 미뤄두는 기류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승부수와 대연정

노 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귀국한 뒤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시점에 맞춰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청와대가 나중에 그 가능성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국무회의 석상에서 `임기중 사퇴' 가능성까지 거론한 노 대통령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을 감안하면 선택의 폭에 거의 제한이 없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즉 지역주의 정치구도 타파를 전면에 내걸면서 여당 당적 포기를 단행한 뒤 한나라당에 거국중립내각 구성, 중대선거구제 도입, 4년 중임 정.부통령제 개헌 등을 제안하면서 궁극적으로는 대연정을 실현하는 방향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여당내 전략기획통들의 입을 통해 심심찮게 거론된다.

사립학교법 재개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이념적 대치전선이 분명한 정책현안도 고리가 될 수 있다.

만의 하나 이런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정치권은 근본적으로 틀이 바뀌게 된다.

이 경우 우선 여당내 통합신당파는 `대연정'에 반발하면서 노 대통령과 확실하게 갈라서고 대항세력으로서의 통합신당을 추진할 명분을 찾게 되고, 노 대통령과 친노그룹은 원내 제1당이 될 한나라당과 공조하면서 임기의 마지막 1년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길을 택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면서 자력으로 충분히 집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한나라당이 대선구도를 밑바닥부터 흔드는 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 또한 높지 않다.

또 실현 여부와 무관하게 노 대통령이 `대연정'으로 해석될 카드를 꺼내는 순간, 자칫 여당내 통합신당파는 물론 친노그룹 일부와 기층 지지세력으로부터 고립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카드가 될 수도 있다. 결국 여론의 향배가 관건인 셈이다.

◇갈등봉합과 한시적 동거

여당내 통합신당파가 탈당을 결행할 만한 명분과 동력을 찾기 어려울 경우, 일단 갈등을 봉합하고 친노그룹과 한시적인 동거상태를 유지하면서 야권의 내년 대선 후보구도가 결정된 이후에 전략적 선택을 모색하는 길도 있다.

당.청이 상호 비방을 자제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사안별 협력을 모색하는 `동반자'로 관계를 재정립하면서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내 각 계파의 고른 지지를 받는 관리형 지도부를 선출하는 방안이다.

또 새로 선출될 관리형 지도부는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서서히 구심력을 회복한 뒤 당내의 총의를 모아 외부 정치세력과의 통합신당을 추진하거나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매개로 대선후보 경선구도를 다각화해 나가는 역할을 맡는다는 구상이다.

끝내 현 여당이 내년 대선에서 독자생존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나면 대선 목전에 여타 정치세력 및 후보와의 연대 등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여당내 일부 중진그룹과 우리당의 정체성을 먼저 확고히 해야 한다는 몇몇 의원들이 이같은 생각에 기울어있다.

아직까지는 소수의 의견이지만, 통합신당을 `지역당'으로 규정한 노 대통령의 공세가 먹혀들고 통합신당파가 탈당 이후 뚜렷한 정치적 실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해 지루한 당내 갈등이 상시화되면 어쩔 수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자릿수 지지율로 추락한 열린우리당 주도의 오픈 프라이머리가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고건 전 총리 역시 여당 주도의 경선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대선국면에서 여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완전히 포기한 채 그대로 있어야 하느냐'는 반발과 `곪았을 때 터트려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기 때문에 봉합론은 현 시점까지 여당내에서 인기없는 카드로 머물러있다.

(서울연합뉴스) 맹찬형 기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