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갈등..국민은 부동산 분열
리더십.사회통합 실종..경제현안 뒷전


한국경제에 먹구름이 끝없이 밀려오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동산 광풍이 전국을 강타하더니 2년8개월만에 조류 인플루엔자(AI)가 발생해 국민을 긴장시키고 있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은 27일 장중에 9년만에 최저수준인 달러당 927.0원까지 하락해 수출기업들이 비명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당과 정부, 국민들은 곳곳에서 반목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부가 우여곡절끝에 만든 출자총액제한제 대안은 여당에 의해 '없던 일'이 됐으며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결별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야당은 장기적인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 보다는 정권 획득을 위한 전술에 온 힘을 쏟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예산안, 국민연금법 개정안,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기본법, 금융산업구조개선 등에 관한 법, 비정규직 법안 등 주요 안건.법안들이 제대로 심의돼 처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민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종합부동산세 과세를 놓고 정부에 분노와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마디로 강력한 경제 리더십이 실종되고 사회적 통합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는 커녕, 다시 위기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지 않다


우리 경제는 최근 내외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악재가 아니더라도 이미 하강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에 비해 0.9%가 늘어나는데 머물러 작년 4.4분기 1.6%, 올해 1.4분기 1.2%, 2.4분기 0.8% 등으로 경기하강의 모습을 확연하다.

특히 지난 3.4분기에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5% 늘어나는데 그쳐 작년 1.4분기의 0.5% 이후 6분기만에 가장 낮은 성장세를 나타냈다.

내년 경제성장률에 대한 연구기관들의 전망치도 한국경제연구원 4.1%, 현대경제연구원 4.2%, LG경제연구원 4%대 초반 등으로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돌고 있다.

게다가 최근 지속되고 있는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설상가상의 악재가 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달러당 959.60원에 도달했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도 계속 내려가 지난 27일에는 930.80으로 마감됐다.

특히 이날 장중에는 환율이 9년만에 최저수준인 927.00원으로 떨어져 외환당국을 긴장시켰다.

환율하락은 한국경제의 핵심 엔진인 수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당국이 주목하고 있으나 수요-공급에 의한 환율 흐름을 근원적으로 되돌리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업계의 우려가 적지 않다.

아울러 최근 전북 익산에서 발생한 AI가 더욱 확산된다면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세계 경제의 상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 당.정 갈등으로 경제현안 뒷전


정부는 우여곡절끝에 출자총액제한제도 개선안을 마련했으나 열린우리당은 지난 27일 열린 당정협의에서 정부안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환상형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를 강력히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출총제 개선 방안은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정부 부처들은 지난 15일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를 도입하지 않고 출총제 적용대상 기준을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2조원 이상 중핵기업에 적용하는 한편 출자한도도 현행 25%에서 40%로 완화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한 바 있다.

경제부처들은 갈등을 노출하면서까지 합의안에 도달했으나 여당의 합의거부에 따라 처음부터 다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여당-청와대 갈등도 가속화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비대위와 상임고문단은 지난 27일 노무현 대통령의 만찬회동 제안을 거절했다.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 회동을 거절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 당.청이 각각 `마이웨이' 수순밟기에 돌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부동산..신중함보다는 분노.적개심

최근에 최대 이슈로 부상한 부동산정책을 놓고 여당과 야당 내부에서도 신중한 고민보다는 일단 목소리를 높이고 보자는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은 최근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조정하고 양도세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으나 당 지도부는 부동산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역시 부동산 세금을 줄이는 문제에 대해 오락가락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정책의총에서 당 조세개혁특위가 마련한 12개 항목의 조세정책 개선안 가운데 종합부동산세 부과기준 상향조정, 1가구 2주택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 등 부동산 관련 내용에 대한 당론채택을 시도했으나 적잖은 반대의견에 부딪혀 무산됐다.

심각한 것은 부동산 가격 급등을 계기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국민간 갈등이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종부세 대상자들은 조세저항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비해 무주택자나 저가주택 소유자들은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다.

◇ 전문가들 "누구를 위한 갈등인가 고민해야"

당.정.국민의 분열은 각종 경제정책이나 민생관련 법안의 입안.집행에 차질을 빚고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 소비와 투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범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선 레이스에 따라 벌어지는 주도권 잡기나 갈등이 앞으로 심해질 것"이라며 "각계 집단의 요구들이 거세지면서 한미 FTA 등 주요정책의 입안이나 집행이 보류.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권말 레임덕이나 여야 대립으로 인한 정책혼선으로 불확실성이 증대되면 기업투자나 소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논란을 벌이는 것은 좋은 대안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 있지만 목적과 기준을 갖고 논란을 벌여야 생산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생산적인 논란은 국내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 경제불안을 초래하고 경제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당.정은 무엇을 위해 논란을 벌이는 것인지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좀더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정부가 이해당사자화 돼있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 정부가 국가전체 이익을 위한 시각에서 갈등을 중재하려면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버려야 하며 그런 모습으로 비춰질 만한 행동을 해서도 안된다"고 조언했다.

그는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가 엄정하고도 중립적인 중재자로 되돌아오고 각 주체들이 지속적인 대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이 율 기자 keunyo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