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60대'란 개념은 오늘날의 얘기가 아니다.

130년 전 독일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독일연방공화국의 토대를 마련한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연금 지급 나이를 65세로 정한 데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 당시 평균 수명은 46세.지금의 연령 분포도를 적용하면 은퇴시기가 104세에 해당하는 셈이다.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1930년대 뉴딜 정책을 입안하면서 연금을 지급하는 은퇴 연령을 62세로 정했는데,그 당시 미국인들의 평균 수명은 63세였다.

뒤집어 보면 삶에 있어 은퇴란 없다는 얘기라는 게 전기보 전앤김웰스펌 대표의 분석이다.

한국의 평균수명은 2000년 75.8세에서 2020년에는 80세로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나아가 금융권은 한국인의 기대수명을 90세로 잡고 고객들의 노후를 설계해 준다.

유아 사망 등을 제외한 50세 이상의 인구만을 따져 보면 장년·노인층의 평균 수명이 이미 90세에 이르렀다는 분석을 깔고 있다.

태어나 30세까지 부모의 도움을 받고,그 다음 30년은 가정을 꾸리면서 왕성하게 경제활동을 하고,마지막 30년은 정년퇴직 이후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른바 '트리플 30' 시대가 우리 사회에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은 '정년퇴직=은퇴=한가로이 노는 것'이란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남성들의 평균 정년퇴직 연령이 55세인 점을 감안하면 트리플 30 시대에 퇴직 후 휴식으로 세월을 보내기에는 노후가 너무나 길다.

아파트 거품이나 자식을 노후 밑천으로 생각하니 퇴직 후가 암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한때 세계 빅3 자동차메이커였던 크라이슬러를 회생시켜 미국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리 아이아코카는 1996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은퇴생활은 실패했다"고 고백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노후를 보내는 데 실패했다는 게 그 이유다.

행복한 은퇴생활의 필요 충분조건은 '돈'과 '의미 있는 일' 양측 모두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미치 앤서니 어드바이저 인사이트 사장은 그의 책 'The New Retirementality'(한국 번역명·은퇴혁명)에서 "은퇴란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재력이 있더라도 경주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카리브해 연안에서 열대음료를 홀짝거리며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쉬는 것이 금융계에서 제시하는 환상이지만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은퇴자들은 경주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풍요로운 은퇴:새로운 현실의 이해'(The Prosperous Retirement: Guide to New Reality)의 저자인 마이클 스타인은 "앞으로는 재정 문제보다 비재정적인 문제로 실패하는 은퇴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50대 초반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2008년 7월 은퇴를 예고한 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일하면서 자선사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선언한 것도 인생 2모작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퇴직은 휴식의 측면이 강했지만 창조적 시대인 21세기에는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다.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는 인생 2모작을 할 수 있는 '권리'일 수도 있다.

은퇴생활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퇴직 이후의 노는 시기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즐기면서 인생을 누리는 때이다.

한국의 산업화를 일궈낸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는 81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조만간 이들은 정년퇴직을 맞게 된다.

엄청나게 쏟아져 나올 은퇴자들이 일을 즐기면서 가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 은퇴에 대한 사회의 통념을 바꿔야 한다.

은퇴혁명은 지금 당장 준비하고 실천해야 성취가 가능하다.

■ 특별기획팀 : 현승윤 경제부차장(팀장) 유병원 경제부 이상열 산업부 김동윤 과학벤처중기부 이호기 사회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