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외환은행 헐값매각의 핵심 인물로 지목, 배임과 개인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외환은행 헐값매입 의혹 사건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분위기다.

8개월여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론스타의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조작가담 여부와 당시 정권실세 등 윗선 개입설 등 의혹은 여전히 짙은 안갯속이어서 이달 말로 예정된 중간수사 발표 때까지 사건의 전말이 드러날지 여부는 미지수다.

"헐값매각 핵심은 이강원"

이날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 전 행장은 헐값매각과 관련해 △외환은행 매각의 불가피성을 왜곡했으며 △매각시 적정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 △이사회에 대한 허위보고 등 크게 세 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통해 외환은행과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실제 이 전 행장은 외환은행 매각 직전인 2003년 7월 BIS 자기자본비율 전망치를 은행 이사회에는 10.0%,금융감독위원회에는 6.16%로 각각 다르게 보고했다.

감사원은 이 전 행장이 외환은행의 추정손실 규모를 3170억∼1조2570억원에서 1조∼1조5000억원으로 부풀리는 방법으로 자산ㆍ부채 실사결과를 조정해 BIS 비율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 BIS 비율이 8% 이하로 산정된 덕분에 론스타가 은행법상 예외조항을 적용받아 대주주 자격을 얻고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입할 수 있었다.

이날 청구된 영장에는 이 전 행장의 개인비리도 포함됐다.

검찰은 이 전 행장이 외환은행 인테리어 용역 및 차세대 뱅킹시스템 납품과 관련해 수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잡고 있다.

검찰은 이날 영장청구로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과 관련된 네 갈래 수사 가운데 외환카드 주가조작과 비자금 조성 등 두 가지 부분에 대한 수사가 거의 마무리됐다는 생각이다.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 등 나머지 혐의는 계속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이와 관련,"이강원씨가 외환은행 헐값매각의 핵심 인물"이라고 밝혔다.

'꼬리자르기'로 끝날 우려도

문제는 이 사건이 이 전 행장 등 외환은행 임직원과 금융감독원 직원 등의 실무라인이 사법처리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경우다.

당시 외환은행 매각에 주도적으로 간여했던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현 보고펀드 대표)과 김석동 전 금감위 감독정책국장(현 부위원장) 등은 BIS비율 조작 등 관련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대표 등 론스타측 핵심 인물들의 신병 확보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때문에 '론스타와 당시 권력실세들의 조직적인 공모'라는 이번 사건 의혹의 몸통은 무혐의 처리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

이른바 '도마뱀 꼬리 자르기'꼴이 날 확률이 크다는 얘기다.

검찰은 론스타측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를 포착,우회적으로 '론스타 때리기'에도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직접 나서 한국검찰을 상대로 '음모론'을 제기할 정도로 투자펀드의 생명인 도덕성에는 상당한 흠집이 가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유회원 론스타어드바이저 코리아 대표와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 등 론스타 본사 경영진 3명에 대해 검찰이 구속 및 체포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수사가 한층 탄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는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박탈로 이어져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의 매각을 재촉하는 효과에 그칠 뿐이다.

애초 검찰 기대대로 외환은행 매입 자체를 무효로 할 만한 파괴력은 없다는 분석이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재경부와 금감위 등 감독기관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며 이들 감독기관 관계자 가운데 피의자 신분이 있을 수 있다"며 구속영장 추가 청구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김병일·정태웅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