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10·25 재보선에서 전패하면서 정계개편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재·보선 참패를 "열린우리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는 국민의 뜻"(김부겸 비대위원)이라는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김근태 의장이 26일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고 평화번영세력의 결집을 통해 국민에게 새 희망을 제시하겠다"며 정계개편 추진을 공식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특히 향후 당의 진로를 놓고 조기 전대를 통한 '재창당론'과 '헤쳐모여식 신당창당론'이 맞선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론이 다시 수면위로 부상하는 등 당이 내홍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오는 29일 비대위 전체회의가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조기 전대 논란=초선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은 이날 소속의원 23인 명의의 공동성명을 통해 "내년 2월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늦어도 1월까지 앞당겨야 한다"면서 "전당대회는 당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새롭고 폭넓은 세력 연대를 구축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문희상 전 의장도 "조기 전대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친노세력의 생각도 이와 일치한다.

전대를 통해 재창당을 이룬 뒤 열린우리당 중심으로 외부세력과의 연대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통합추진 수임기구 구성 얘기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우리당 내 중도성향 초선의원 모임인 '국민의 길'은 즉각 반발했다.

'국민의 길' 운영위원인 전병헌 의원은 "재창당은 호박에 줄 긋는 것이고 조기 전대는 호박껍질을 두껍게 하려는 것"이라며 "지금은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열린우리당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집권의 희망과 비전의 틀을 새롭게 짜서 새 당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부겸 의원은 "열린우리당의 존치를 전제로 정계개편을 말하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열린우리당 간판을 내리고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주목받는 노 대통령 거취=노 대통령 탈당론이 선거패배를 계기로 다시 제기되고 있다.

호남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대통령이 이런 때일수록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시는 게 정계개편을 더 자유롭게 하지 않겠느냐"며 "대통령을 다들 의식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위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탈당론을 거론했다.

통합의 최우선 대상인 민주당이 노 대통령 탈당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민심이반에 따라 크게 흔들리고 있는 호남 의원들이 민주당 등과의 통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개별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나라 긴장감,민주는 여유=한나라당은 잔뜩 경계심을 드러냈다.

여당이 인위적인 '판 흔들기'를 통해 정계개편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한나라당에 유리한 내년 대선구도가 자칫 흐트러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여당이 턱도 없는 정계개편 수작을 한다든지,판 흔들기와 같은 공작적 행태를 보인다면 영원히 버림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민주당이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헤쳐모여식 신당 창당'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26일 PBC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열린우리당은 민주당에 편승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의 재·보선 패배로 정계개편이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서 여당 내에서 '민주당발 정계개편 흐름'을 끌어내기 위한 압박으로 보인다.

이재창·홍영식·노경목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