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보리 예비투표에서 유엔총회에 추천될 사무총장 단수 후보 자리를 굳힌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은 올 2월14일 사무총장 도전 사실을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시작은 지난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엔 사무총장 지역순환의 관행에 따라 2007년 1월 5년 임기를 시작할 새 총장은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는 차원에서 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일부 국가들이 유엔 사무총장 레이스에 지난해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04년 12월 주미대사로 내정됐던 홍석현씨가 출마 의지를 맨 먼저 피력함에 따라 한동안 정부 안에서 다른 후보가 나설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다.

그러다 홍 전 대사가 지난 해 7월 안기부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부 고위층에서 반 장관을 후보로 내세우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진 끝에 지난해 9월께 반 장관이 우리 정부가 추천하는 후보로 확정됐다.

정부는 후보 확정 사실이 조기에 외부로 공개되는 것 자체가 유리할게 없다는 판단에 따라 조용하게 물밑 작업을 진행했다.

그랬던 정부는 반 장관이 2월14일 정식 출사표를 던진 이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부는 반 장관이 외교 장관직을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특별한' 지원을 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외교현안이 많은 나라에서 외교장관이 사무총장 후보로서 선거운동을 병행한다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없지 않았던게 사실.
그러나 결국 정부는 반 장관이 외교 장관직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그가 외교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했던 것이 반 장관의 사무총장 내정에 주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선거운동 전략은 한마디로 `도광양회'(`빛을 감추어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하고 자세히 살펴서 터득하겠다') 였다.

반 장관이 적임자라는 인식의 지평을 최대한 조용하게(low-profile) 넓혀 나가겠다는 것이다.

대책팀도 외교부 김원수(金垣洙) 장관 특별보좌관을 팀장으로 유엔과 직원 2명 등 총 4∼5명 규모로 꾸려 조용하게 실무지원을 하도록 했다.

날개를 단 반 장관은 전 세계를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공식출마선언 전인 1월 말~2월 초 아프리카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가나.

콩고, 상임 이사국인 프랑스 등을 방문, 지지기반을 다진 반 장관은 3월 대통령의 아프리카 방문길에 동행하며 이집트, 나이지리아, 알제리 등을 방문했다.

이어 같은 달 남미의 비상임이사국인 아르헨티나와 페루를 방문한데 이어 4월 유럽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덴마크.슬로바키아 등을 찾아가 외교장관 회담 등을 갖고 지지를 요청했다.

그렇게 세계를 돌며 세를 넓혀가던 반 장관에게 7월 희소식이 날아 들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차기 총장은 아시아인 차례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던 미국이 아시아 후보 지지 쪽으로 돌아선 낌새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월10일 "내가 알기로, 유엔 사무총장은 전통적으로 지역을 순환한다 "면서 아시아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피력했다.

이 분위기 속에 7월24일 열린 1차 예비투표에서 반 장관은 찬성 12표,반대 1표,기권 2표로 1위를 차지하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이 결과는 8월 말 우리 정부가 2007~2008년도 2년 임기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진출 목표를 뒤로 미루고 반 장관 당선에 외교력을 집중시키기로 결단한 계기가 됐다.

이어 반 장관은 9월14일 2차 예비투표에서 14개 이사국의 지지를 받으며 기세를 이어갔다.

9월 들어 대통령을 수행, 안보리 이사국인 그리스 등 유럽 3개국을 방문한 반 장관은 이어 9.14 한미 정상회담에 관여하면서 북핵해결을 위한 `포괄적 접근방안'이 도출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아울러 이때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확고한 지지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반 장관의 유세 활동은 9월 중.하순 유엔 총회 기조연설 기간 정점에 달했다.

그는 이 기간 각국 정상 60여명을 포함한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지지세 굳히기에 들어갔다.

아울러 반 장관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등과의 양자 외교장관 회담과 연설 등 기회를 빌어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서 유엔 사무국 개혁의 비전, 아프리카 등 빈곤국 개발 구상 등을 피력했다.

그러던 중 반 장관은 9월 28일 제3차 예비투표에서 찬성 13표(반대 1표, 기권 1표)를 획득하면서 `반기문 대세론'을 기정사실화했다.

2위인 인도의 샤시 타루르(찬성 8.반대 3.기권 4) 후보와의 격차를 벌리면서 유일하게 사무총장 피선을 위한 정족수(9표 이상)를 확보한 것이다.

그리고 10월 2일(한국시간 3일) 처음으로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의 투표 용지(각각 빨강.파랑)를 구분해 치른 제4차 예비투표에서 반 장관은 당당히 1위를 차지하며 약 8개월간 지속됐던 선거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이 사이 반 장관에게도 위기가 없진 않았다.

북한이 7월5일 미사일을 연쇄발사하면서 동북아의 위험요인을 도드라져 보이게 만들었고 올 4월에는 한일간 동해 해양경계를 둘러싼 분쟁때문에 동해의 파고가 높아지기도 했다.

결국 반 장관은 각종 악재를 그때그때 극복해 나가더니 3일 유엔 사무총장직을 사실상 예약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