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능률과 형평,성장과 분배는 어느 시대나 국가를 막론하고 항상 부딪히는 국가의 전략적 과제다.

어찌 보면 새로운 경제이론의 등장도 이러한 기본명제를 풀기위한 논리적 연구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전 치러진 스웨덴 총선결과를 두고 지구 반대편인 한국에서 더 뜨거운 논쟁이 벌어진 진풍경도 따지고 보면 그런 논란의 한자락이 아닌가 싶다.

논란의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서 자세히 반복하지 않더라도 잘 알려져 있다.

총선결과는 그간의 복지정책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고,따라서 참여정부의 복지정책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게 언론의 해석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행 복지정책의 축소를 주장한 스웨덴 우파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한 것을 그간의 복지정책이 실패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이고 따라서 이를 참고 삼아 골격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을 수정하라는 식의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게 그 골자였다.

그러나 여기서 우선 의문스러운 것은 정부가 그토록 민감하게 반박하고 나선 까닭이다.

꼭 국내 언론이 아니더라도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비슷한 논조(論調) 아니었던가.

스웨덴 총선결과는 정부 역할 축소요, 복지정책의 반성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민주주의를 채택해왔던 유럽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복지보다 일자리가 우선이라는 기본 전략은 도도한 흐름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를 비롯한 정책당국자들이 총선에 승리한 우파정부가 주장하는 복지수준의 절반이라도 갖춰 놓자는 것이 참여정부가 추구하는 복지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문서답이고 억지가 아닐 수 없다.

복지의 수준을 따지자는 것은 아닌 탓이다.

어디까지나 앞서나간 나라들의 정책추진을 참고하자는 것이다.

이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후발국들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후생과 복지의 향상이란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은 사회서비스분야 좋은 일자리 창출 보고대회에 참석,"성장이 일자리 문제도 해결하고 국민후생을 해결하던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나간다"고 언급했다.

후생이 성장하지 않으면 경제도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동반성장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장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나눠먹을 수 있는 파이를 더 키워나가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보다 분명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논란이 돼 온 큰 정부·작은 정부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볼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는 작은 정부보다 일 잘하는 정부를 지향한다고 밝혀왔다.

최근 발표된 비전2030 역시 그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미래를 논의해 보자는 것이지 큰 정부를 지향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의 크고 작음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우리 경제규모와 공무원 숫자를 대비시켜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적다든가 하는 비교는 설득력이 약하다.

불필요한 기능을 그대로 두고 새로운 서비스 기능만 추가해 공직자 수를 늘리는 것은 비효율이다.

정부란 것도 불필요한 규제와 조직을 도려낸 후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스웨덴 총선결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그러나 '소동'에 가까운 스웨덴 총선 논란을 보면서 더 의문인 것은 과연 정부가 여론을 수렴하고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론(輿論)의 輿자에는 '수레'의 의미도 있고 싣는다는 뜻도 있다.

수레에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이런 저런 의견들을 수레에 가득 싣는 것이 여론이라는 얘기다.

자신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배척하고,나아가서는 자기 주장을 국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는 것은 바람직한 대응방법일 수 없다.

자칫 역효과를 내기 십상이다.

참여정부의 그간 대응이 어떠했는지는 스스로 판단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