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면 어떻게 될까.

45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이 헌재의 결정에 따라 오락가락 했으며,30조원 규모로 커진 사교육 시장도 과외교습을 허용한 헌재 결정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지형과 틀을 바꾸는 헌재의 결정은 돈으로 따지면 하나 하나가 수천억원에서 수십조원의 가치를 지닌다.

결정에 따라서는 기업이나 개인의 생사가 엇갈릴 수도 있다.

헌재 결정(법)이 곧 경제적 가치(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헌법재판소장 인준 여부가 국민적인 관심을 갖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4기 헌재의 출발을 앞두고 지금까지 헌재가 내린 주요 결정이 미친 경제적 영향을 살펴본다.

○사(私)교육 시장 2배 이상 키워

국내 사교육 시장이 폭발적으로 팽창한 데는 헌재의 역할이 컸다.

2000년 4월 "'과외교습 금지법령'은 자녀교육권과 행복추구권에 위배된다"며 내린 위헌 결정이 잠재해 있던 사교육 수요를 촉발시킨 것.이후 사교육 시장은 팽창일로를 달렸고 결정 당시 불기 시작한 인터넷 붐에 편승,온라인 사교육 업체가 늘면서 사교육 시장의 판도도 변했다.

현재 사교육 시장 규모는 학원이나 온라인교육 업체 등 공개돼 확인 가능한 규모만 연간 16조원.2000년 전국 초·중·고생의 총 과외비 규모 7조1300억원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여기에 일반인이나 대학생 과외를 비롯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교육을 합치면 시장 규모가 30조원은 거뜬히 넘는다는 게 교육 관련 업계의 추정이다.

○백화점 셔틀버스 금지,결혼 피로연 접대 허용은 업체 간 희비 갈라

백화점과 대형 할인매장의 셔틀버스 운행을 전면 금지시킨 것도 2001년 내려진 헌재 결정이다.

수천억원의 이권이 걸린 이 소송에서 동네 슈퍼마켓 등 중소 유통업체와 버스회사를 비롯한 운송업체들은 백화점의 지점당 30여대에 이르는 무료 셔틀버스 운행으로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고 주장,승소했다.

하지만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분분하다.

특히 운수업계의 경우 백화점 고객들이 버스 대신 자신들의 승용차를 이용하면서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다.

헌재는 2003년 5월에는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직권중재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01년에는 명의신탁의 법적 효력을 부인하고 기존 명의수탁자에게 1년 이내에 실명으로 등기토록 한 부동산실명법 규정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중 '허례허식 행위의 금지' 조항은 위헌 결정했다.

이로 인해 오후 3~5시의 결혼 피로연에서 음식을 접대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이 사라지면서 예식 관련 이벤트 업체와 외식 업체들이 호황을 누렸다.

○45조원 국책사업이 '오락가락'

2004년 10월 헌재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신행정수도 건설비용은 총 45조6000억원.정부가 11조3000억원,민간이 34조3000억원을 투자해 인구 50만명 규모의 행정수도를 건설하려던 계획은 헌재의 결정으로 하루 만에 백지화됐다.

신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생산유발 효과 내지 지역 내 국민총생산)는 수도 이전의 찬반 여부에 따라 최소 71조원에서 최대 265조원까지 다양했다.

헌재는 1년 뒤인 2005년 11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을 위한 특별법' 헌법 소원에서는 정부측 손을 들어줬다.

행정도시 건설에 들어갈 총 비용은 신행정수도와 동일한 규모.정부 부담분만 8조5000억원으로 약간 줄었다.

후속 조치로 충남 공주·연기에 12부와 4처 2청 등을 포함한 49개 중앙 행정기관과 중앙 행정부처 공무원 9992명가량이 이동할 예정이어서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김동욱·이태훈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