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에 사는 권문형씨(가명·39)는 최근 전세계약을 연장하려다 애를 먹었다.

집주인이 2억원인 전세금을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170만원으로 바꾸겠다고 고집을 부려서다.

전세 위주였던 주택 임대차가 점차 월세로 바뀌고 있다.

특히 보증금을 낀 '보증부 월세' 방식에서 미국 등과 같은 순수 월세 방식이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세 방식의 임대차 계약은 2000년 211만3243가구에서 지난해 301만1855가구로,5년 사이에 43%(89만8612가구) 급증했다.

올해도 월세 증가 추세는 뚜렷하다.

서울지역 신규 임대차계약 중 월세(보증부 월세 포함) 비중은 지난해 1월 39.1%에서 올 1월 39.5%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 8월 말 41.3%로 증가해 전세(58.7%)를 바짝 뒤쫓고 있다.

○집주인 '월세전환' 요구 잇따라

20일 중개업소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진아파트 27평형 임대가격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 70만원 수준이다.

전세 물건은 하나도 없다.

두산부동산랜드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매달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밀집지역인 상계동도 마찬가지다.

18평형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 40만원,21평형은 2000만원에 월 45만원 선이다.

우성공인 이맹주 사장은 "전세 물량이 워낙 귀해 월셋집이라도 구하겠다는 세입자가 늘었다"고 귀띔했다.

역삼동 푸르지오공인 관계자는 "20평형대 이하 소형일수록 월세 전환이 활발한 편"이라고 전했다.

월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아직 보증부 월세가 많지만,6개월치 이상의 월세를 선납하는 '장기형' 순수 월세도 늘어나고 있다.

주한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태원동의 경우 1~2년치 월세를 먼저 받은 다음 매달 일정액씩 감해나가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보증부 월세의 경우 보증금이 줄어드는 대신 월세 부분이 증가하는 추세다.

보증금 1억원에 월 50만원이던 것을 보증금 5000만원에 월 100만원으로 바꾸는 식이다.

○저금리로 월세계약 늘어

이처럼 월세가 늘어나는 이유로는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받아 굴려봤자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예전보다 훨씬 적어졌기 때문이다.

전세 품귀로 소유주들의 월세 전환이 쉬워진 것도 배경이다.

독신자 등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월세계약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인구·주택 총조사에서 1인 가구는 작년 317만가구로,2000년 222만가구보다 95만가구(42.5%) 늘었다.

정부 역시 월세 방식의 국민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하고 있어 향후 월세 계약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트렌드로 정착될 듯

전문가들은 월세가 전세를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전세는 주택금융이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임대차 계약"이라며 "금리가 떨어지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월세 방식이 주축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전세가 월세 방식으로 대체되면 세입자들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월세 증가가 전세 물량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