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수원성을 둘러싼 몇개 문(門)을 따라 도시가 발달한 경우다.

도로가 성곽 문을 빙 둘러 형성되면서 상권도 이를 따라 발달하게 됐다.

수원성 남쪽에 위치한 남문(팔달문)은 제2정문으로 팔달산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수원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조건은 좋은 셈이다.

수원 남문 상권은 수십년간 재래시장을 축으로 성장해왔다.

전성기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이었다.

기존의 재래시장과 남문백화점,크로바백화점,중앙극장,유흥가 등으로 대표되는 남문과 중동사거리,영동시장의 중간지점에 로데오거리(남문 패션1번가)가 조성됐다.

의류상권은 급속도로 팽창했고 수원뿐만 아니라 경기 남부권에 사는 젊은이들과 여성들을 끌어모으는 파급력을 가졌다.

유동인구는 급격히 증가했다.

로데오거리 근처에서 9년째 신발 노점상을 하고 있는 백혜석씨(62·여)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리가 비좁았다"며 전성기 때를 회상했다.

수원 남문의 한 의류점포에서 전국 최고 매출액이 나오는 등 전성기를 구가했다고."이제는 그 시절의 절반도 못 따라갑니다.

빈 점포가 얼마나 많은데요." 실제로 '권리금 없음'이라고 써 붙인 '임대문의' 점포가 로데오거리에서만 수십개 눈에 띄었다.

의류점 '테스'의 양승만 사장(37)은 원래 로데오거리에 매장이 두 곳 있었으나 올해 점포 하나를 팔았다.

"이제 동네 장사입니다.백화점에 고객들을 많이 빼앗겼죠." 12년째 이곳을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인 양 사장은 1990년대 중반에는 매장 직원을 5명까지 뒀다.

지금은 직원 한 명과 일하고 있는 양씨는 남문 로데오거리를 상설할인매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 이곳이 할인매장인줄 아는데 아닙니다.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춰야 해요." 양씨 점포의 월세는 500만원 선이다.

스포츠 의류 'K-SWISS' 점주 김세중씨(43)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장사 5년차인 김씨는 최근 3년 사이에 매출이 30%가량 급감했다고 전했다.

"장사가 안되니까 권리금이 자연스레 없어지더군요.3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보통 3억원이었는데 말입니다." 비수기인 여름철에는 매출이 뚝 떨어진다고 한다.

그나마 겨울이나 신학기 등 성수기 때 잠깐 장사가 잘되는 수준이라고.손님 발길이 일찍 끊겨 밤 9시면 매장 문을 닫는다.

자정까지 장사하던 2000년대 초와는 사뭇 달라진 양상이라고 김씨는 덧붙였다.

백정화 수원남문 패션1번가 주임(35·여)은 인근 수원역 상권이 번성하면서 남문 상권에 타격을 줬다고 분석했다.

"예전에는 이곳이 수원의 중심이어서 모든 버스가 남문을 거쳐 갔습니다.이제는 수원역으로 바로 가죠.여긴 지하철도 없습니다."

남문 상권에 있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가 2년 만에 폐관된 것도 상권의 슬럼화를 부추기는데 한 몫 했다.

CGV측은 "수원 남문 CGV의 위탁경영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극장을 위탁경영하는 것이나 철수한 것 모두 CGV측으로는 전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영화관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200여개로 추정되는 옷가게 로드숍이 한 곳에 몰려있어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분석도 있다.

같은 업종의 점포가 지나치게 많아 매출 부진과 공실화를 야기했다는 것이다.

베레슈트와 수원디자이너클럽 등 동대문형 쇼핑몰들도 영업을 중단,남문 상권의 공동화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지하철이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도 단점이다.

버스노선은 풍부한 편이지만 남문 상권을 관통하는 지하철이 없어 소비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그나마 남문 로터리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의류점포가 몰려있는 로데오거리에 비해 권리금 시세가 비교적 높게 형성돼 있으며 패스트푸드,팬시점,화장품,분식집,스티커사진 전문점 등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점포들이 몰려있다.

한 팬시점에서 일하는 박제원씨(28)는 "하교 시간부터 이른 밤까지 여중·고생들로 가게가 붐빈다"면서 "애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라 그런지 객단가는 2000원 정도"라고 말했다.

남문 상권을 찾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의류 쇼핑이 주된 목적이었다.

인근 경기대에 다니는 김남일씨(25)는 로데오거리에 한달에 두 번 정도 옷을 사기 위해 온다고 했다.

"교통이 불편한 게 단점입니다.가격은 괜찮은 것 같아요." 주부 김희진씨(42)도 아이들과 남편의 옷 구입을 위해 남문에 온다.

"한번 올 때마다 옷 값으로 10만원 정도 써요."

전문가들은 수원 영통지구,안양 범계역,광명 철산 등 도시 주변 신흥상권이 급부상하면서 수원 남문,안양역,광명사거리 등 전통 상권 쇠퇴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상권을 업그레이드할 개발 호재도 별로 없는 편이어서 전통 상권 쇠락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