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이달말 5년 5개월간의 '장수 정권'을 마감한다.

2차대전 이후 제3위의 장기집권에 성공한 '고이즈미 내각'의 평균 지지율은 56.0%로 나타났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여론조사 결과 고이즈미 정권을 '평가한다'는 비율이 64%에 달한다고 전했다.

3명에 2명 꼴로 '개혁'을 화두로 내걸었던 고이즈미의 일본을 평가한 셈이다.

지난 3년간 일본 증시의 닛케이지수는 66% 올랐고, 지난해 국민총생산(GDP)은 3% 이상 성장했다.

조만간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 종결을 선언한다.

일본 경제의 완전 부활을 알리는 셈이다.

하지만 화려한 수치와는 별개로 고이즈미 정권의 그늘도 분명했다.

6차례에 걸친 그의 고집스런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일본의 아시아 외교를 도탄에 빠뜨렸다.

그가 추진한 '정글 자본주의'는 '격차 사회'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일본 사회를 양극화로 몰아갔다.

일본 국민이 고이즈미 정권을 지지한 것은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던 그의 집권 공약처럼 담합.금권정치의 온상이었던 자민당의 파벌을 흔들며, 주권자인 국민을 정치의 중심에 서게 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가 최근호에서 "그는 국민을 정치 속으로 이끌었다.

이는 전례 없던 일이다"고 평가한 것은 고이즈미 정치의 명암 가운데 밝은 쪽을 지적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8월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되자 중의원을 '자폭 해산'했다.

'고이즈미 극장정치'를 연출하며 중의원 선거를 대승으로 이끌었던 승부수였지만 실은 그에겐 최대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 무사와도 같은 결기로 사태를 평정했고 장수 정권의 길을 다졌다.

고이즈미 총리의 비서관인 이지마 이사오(飯島勳)는 15일자 마이니치(每日)신문과의 회견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결단의 순간 협객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할까,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화외빈'이라고 할까, 그의 근린외교, 즉 한국 및 중국과의 외교는 '파탄'의 내리막 길을 걸었다.

임기 중 고집불통식으로 6차례에 걸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결과, 일본은 이웃인 한국.중국과 정상회담이 끊겨버렸다.

지난해 전직 총리 출신 5명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신사참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을 정도였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귀를 닫아버렸다.

올해는 아예 8.15를 골라 연미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보란 듯이 신사 본전 계단을 올랐다.

그 결과,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도 정상회담이 열리지 못하는 지금을 "정상은 아니다"라고 토로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
'고이즈미 정권'의 명암은 이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에게 고스란히 물려질 전망이다.

'아베 정권'은 26일 출범한다.

고이즈미 총리가 가장 바랐던 자신의 후임이 아베 장관이었다.

이지마 비서관은 "고이즈미 총리가 거품 후보로 불렸었던 첫 총재선거(1995년) 출마시 추천인의 중심에 섰던 사람이 지금의 아베 관방장관이었다"며 "아베 장관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 간사장 시절 국회대책부위원장을 지내며 지도를 받았던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베 외교'는 고이즈미 정권의 연장선에서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욱 강경할 전망이다.

현지 언론은 "아베 정권이야말로 야스쿠니문제를 잠재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야스쿠니참배를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아베 정권의 승부처는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이다.

최대야당인 민주당에 패배할 경우 아베 정권은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판세가 어려워질 경우 아베 정권은 더욱 강경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야스쿠니 참배, 북한 때리기 등의 강경정책이 구사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고이즈미 총리가 구원투수로 '재등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벌써 흘러나오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