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레셉스는 1869년 수에즈운하 완공의 공을 인정받아 81년 파나마운하 건설을 맡는다.

파나마 지역은 지형과 기후가 수에즈와 다르고 그동안 기술도 바뀌었는데 레셉스는 자기 생각과 방법을 고집하다 89년 파산했다.

운하는 결국 1914년 미국 엔지니어들이 도입한 갑문식으로 이룩됐다.

레셉스의 이런 참담한 실패를 윤석철 교수는 '인식의 오류' 탓이라고 규정했다.

역사적 성공을 거둔 능력과 기법도 세월의 흐르면 쓸모없거나 잘못된 것일 수 있는데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낡은 틀을 고집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오늘날 변화의 속도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비할 수 없다.

"21세기는 생각의 속도가 결정한다"는 빌 게이츠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순식간에 뒤처진다.

앨빈 토플러는 이런 현상에 주목,신작 '부의 미래'에서 현 사회의 문제는 신경제의 요구와 구사회의 타성적 조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선진 경제를 이루려면 선진 제도가 필요한데 지금은 비즈니스 세계와 다른 부문의 변화 속도가 너무 달라 충돌을 빚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만 해도 기업과 금융은 100마일,시민단체는 90마일,가족 형태는 60마일로 변하는데 노동조합은 30마일,관료조직은 25마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화석에 박힌 호박처럼 옛방식을 고수하고,관료조직 역시 느려 터졌다고 말한다.

그래도 학교보다는 낫다며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체계가 어떻게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을 준비시킬 수 있는가'라고 썼다.

정치조직(3마일)과 법률(1마일)은 더하다고 밝혔다.

그는 기능불량 상태인 느림보 조직들이 초스피드의 21세기 정보 생물학적 경제를 가로막는다며 새로운 부(富)를 창출하자면 "구시대적 조직을 뿌리뽑거나 대체하거나 혁신적으로 재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속도의 충돌'에 따른 혼란으로 치자면 미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