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9ㆍ11이 바꿔놓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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嚴漢振 < 한림대 교수·사회학 >
5주년을 맞은 9ㆍ11테러는 무엇보다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이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공방을 중심으로 얘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9ㆍ11 이후의 세계를 얘기할 수 있다.
먼저 9ㆍ11테러로 인해 사람들은 세계를 테러리즘과 종교를 중심으로 바라보게 됐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 사건을 계기로 부쩍 커진 세계 다른 지역에 대한 관심이 주로 전쟁과 테러라는 극적인 상황이나 매우 낯선 종교문화에 쏠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식의 사고는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의 정치도구화,그리고 테러 및 안전 담론(談論)의 부상이라는 테러 이후 세계의 두 가지 주요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먼저 전자는 근본주의,극우주의,종족분쟁과 같은 소위 '정체성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미 1980년대 이후 세계화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사회적 현상이었다.
9ㆍ11은 이것에 절대적인 근거를 제공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9ㆍ11테러 이전 이슬람세계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근본주의의 전반적 쇠퇴 및 온건화 추세를 보였었다.
그러다가 9ㆍ11테러의 영향으로 종교 및 종족성의 정치화,정치의 종교화 현상이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그간 이 지역의 정치 종교화 경향에서 다소 비켜서 있던 이라크마저 미국의 점령 이후 종족간,종파간 갈등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등 정체성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부상(浮上)과 정교(政敎)분리주의의 약화는 이슬람 세계뿐 아니라 미국, 심지어 유럽에서도 나타나는 전지구적 차원의 현상이다.
그리고 그 해악적인 결과의 하나로 종족적·종교적 정체성에 의해 국가가 분열되는 소위 '레바논화' 현상이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9ㆍ11테러는 또한 대(對)테러전쟁, 그리고 사회의 치안문제화 경향을 낳았다.
유럽의 경우 9ㆍ11테러는 범유럽 차원에서의 정보분야 협력,반(反)테러 로드맵으로 이어졌고 미국의 애국법은 단지 아랍인,무슬림 또는 동남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근거없이 체포 구금을 허용하는 등 특히 외국계 국민들의 인권침해를 초래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부시의 대테러전쟁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관시키는 식으로 나타났다.
9ㆍ11이 없었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량이주' 전략과 '안전장벽'의 설치를 지금처럼 손쉽게 추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9ㆍ11테러에 힘입은 정체성 정치와 안전담론은 빈곤과 배제, 종속의 심화와 같은 세계화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종교,인종,인구,치안문제로 끌고가려는 지배전략의 두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다.
한편 9ㆍ11테러로 인해 1세기 전 제국주의 열강의 이데올로기였던 서양·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이분법 구도가 심화되고 아랍국가들의 자주성과 저항능력이 더욱 약화된 한편 미국에 대한 유럽의 위성국가화도 본격화되었다.
새로운 점으로는 앞서 언급한 테러 및 안전담론의 부상 이외에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투쟁의 축(軸)이 보다 군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차원으로 전이(轉移)되고,중동지역이 이 새로운 형태의 헤게모니 투쟁의 주된 지역으로 재부상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9ㆍ11테러로 인해 우리는 9ㆍ11 그 자체에,그리고 9ㆍ11이 부각시킨 테러와 안전,종교적 차이에 몰두하게 됐다는 점이다.
즉 9ㆍ11테러가 심화시킨 지역질서의 불안정과 통제사회화, 종교적·종족적 갈등이 우리로 하여금 강대국과 국가의 폭력에 면죄부를 주거나, 지역·사회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의 모색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9ㆍ11이 보지 못하게 하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과 그 해결책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5주년을 맞은 9ㆍ11테러는 무엇보다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와 이 사건의 진실을 둘러싼 공방을 중심으로 얘기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한 논의와는 별도로 9ㆍ11 이후의 세계를 얘기할 수 있다.
먼저 9ㆍ11테러로 인해 사람들은 세계를 테러리즘과 종교를 중심으로 바라보게 됐다.
우리의 경우에도 이 사건을 계기로 부쩍 커진 세계 다른 지역에 대한 관심이 주로 전쟁과 테러라는 극적인 상황이나 매우 낯선 종교문화에 쏠리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식의 사고는 종교적·종족적 정체성의 정치도구화,그리고 테러 및 안전 담론(談論)의 부상이라는 테러 이후 세계의 두 가지 주요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먼저 전자는 근본주의,극우주의,종족분쟁과 같은 소위 '정체성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이미 1980년대 이후 세계화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사회적 현상이었다.
9ㆍ11은 이것에 절대적인 근거를 제공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9ㆍ11테러 이전 이슬람세계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근본주의의 전반적 쇠퇴 및 온건화 추세를 보였었다.
그러다가 9ㆍ11테러의 영향으로 종교 및 종족성의 정치화,정치의 종교화 현상이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그간 이 지역의 정치 종교화 경향에서 다소 비켜서 있던 이라크마저 미국의 점령 이후 종족간,종파간 갈등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등 정체성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종교의 부상(浮上)과 정교(政敎)분리주의의 약화는 이슬람 세계뿐 아니라 미국, 심지어 유럽에서도 나타나는 전지구적 차원의 현상이다.
그리고 그 해악적인 결과의 하나로 종족적·종교적 정체성에 의해 국가가 분열되는 소위 '레바논화' 현상이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
9ㆍ11테러는 또한 대(對)테러전쟁, 그리고 사회의 치안문제화 경향을 낳았다.
유럽의 경우 9ㆍ11테러는 범유럽 차원에서의 정보분야 협력,반(反)테러 로드맵으로 이어졌고 미국의 애국법은 단지 아랍인,무슬림 또는 동남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근거없이 체포 구금을 허용하는 등 특히 외국계 국민들의 인권침해를 초래했다.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부시의 대테러전쟁에 팔레스타인 문제를 연관시키는 식으로 나타났다.
9ㆍ11이 없었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대량이주' 전략과 '안전장벽'의 설치를 지금처럼 손쉽게 추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9ㆍ11테러에 힘입은 정체성 정치와 안전담론은 빈곤과 배제, 종속의 심화와 같은 세계화 시대의 핵심적인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가 아닌 종교,인종,인구,치안문제로 끌고가려는 지배전략의 두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다.
한편 9ㆍ11테러로 인해 1세기 전 제국주의 열강의 이데올로기였던 서양·기독교 대 이슬람이라는 이분법 구도가 심화되고 아랍국가들의 자주성과 저항능력이 더욱 약화된 한편 미국에 대한 유럽의 위성국가화도 본격화되었다.
새로운 점으로는 앞서 언급한 테러 및 안전담론의 부상 이외에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헤게모니 투쟁의 축(軸)이 보다 군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차원으로 전이(轉移)되고,중동지역이 이 새로운 형태의 헤게모니 투쟁의 주된 지역으로 재부상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9ㆍ11테러로 인해 우리는 9ㆍ11 그 자체에,그리고 9ㆍ11이 부각시킨 테러와 안전,종교적 차이에 몰두하게 됐다는 점이다.
즉 9ㆍ11테러가 심화시킨 지역질서의 불안정과 통제사회화, 종교적·종족적 갈등이 우리로 하여금 강대국과 국가의 폭력에 면죄부를 주거나, 지역·사회문제에 대한 합리적이고 장기적인 대안의 모색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9ㆍ11이 보지 못하게 하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과 그 해결책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