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첼 라이스 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9일 북핵 문제와 관련,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6자 회담 참가국들에게 근본적인 정책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라이스 전 실장은 이날 오후 제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최로 열린 제4차 `글로벌 전략 검토' 국제포럼 연설에서 한국과 미국, 중국.러시아.일본 등 5개국은 "현 정책의 비용과 효과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 클럽의 다음 번 회원이 되는 것을 막을 기회가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지난 7월 북한이 강행했던 미사일 발사의 득실을 볼 때, 북한도 최대 후원자인 중국의 반발을 사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오히려 나머지 5개국이 "상대적인 패자"라고 평가했다.

그 평가의 근거로 라이스 전 실장은 ▲대응 과정에서 한일간 알력 등 5개국간 균열 노출 ▲미국의 안보우산에 대한 신뢰성 저하 ▲국제사회의 반응을 측정하고자 하는 북한 의도의 충족 등을 거론했다.

이와 관련, 그는 "지난 몇년간 북한에 관한 전체 외교 프로세스의 가장 놀라운 측면은 전세계 4대 군사.경제강국들이 동북아에서 전략적 환경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인구 2천300만명의 가난하고 고장난 나라가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의 평화.안정을 위협하는 것을 막을 능력이 없음을 입증했다"며 "집단적 실패"라고 꼬집었다.

우선 그는 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 미 행정부의 정책 실패를 거론했다.

부시 정부가 구사해온 외교적 해법도, 일부 강경파의 김정일 정권 전복 시도도 모두 실패한 반면, 북한은 그 기간에 핵무기 1∼2개에 정도를 만드는데 필요한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는데서, 이제는 약 6∼12개를 만드는데 충분한 핵물질을 보유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부시 정부의 "진정한 실패는 3년동안 베이징에서 단속적으로 협상을 한 이후에도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있는 지, 포기할 경우 어떤 반대급부를 원하는 지에 관해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 전 실장은 부시 미 행정부가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지도 문제삼았다.

그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대가로, 탄도 미사일과 대규모 재래식 군비를 갖추고 주민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는 김정일 체제의 영구화를 용인할 수 있겠는가"라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 라이스 전 실장은 한국과 중국의 대북 접근법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중 양국은 지금까지 대북한 정책에서 에너지와 식량 지원을 포함해 `인센티브에 기초한' 접근만을 하다보니, 오히려 대북 영향력은 점점 더 줄어들고, 북한은 계속 두 나라에 "배은망덕한 행동"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과 남한은 북한이 자신의 행동을 정할 수 있도록 당근 뿐아니라 몽둥이를 사용할 의지를 보여주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도 불구, 중국과 남한이 계속 대북 유화책만을 쓰는 그 이면에는 "북한의 미래 모습을 놓고 서울과 베이징간에 벌어지는 미묘한 경쟁" 문제가 놓여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제네바연합뉴스) 이 유 특파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