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호+아드보호 색깔 배합..좌.우 공격 '편식증'

90분 가운데 89분을 이기고도 마지막 1분에 질 수 있는 게 축구다.

2일 상암벌에서 펼쳐진 베어벡호의 안방 데뷔전이 바로 그랬다.

지지는 않았지만 경기 내내 승리의 기운을 만끽했던 6만여 팬들은 종료 직전 1분에 허탈감을 느낀 채 쓸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베어벡호의 전략.전술은 출발이 비교적 괜찮았지만 결과적으로 여전히 미완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생각하는 축구'를 승리로 연결하겠다던 베어벡식 축구는 히딩크호와 아드보카트호를 배합한 듯한 '색깔'을 드러냈지만 '바로 이것'이라고 할 만한 특징을 보여주진 못했다.

핌 베어벡 감독은 아드보카트호의 큰 틀을 유지했지만 몇 가지 '변형'을 시도했다.

이란의 위력적인 투톱 알리 카리미(바이에른 뮌헨), 바히드 하세미안(하노버)을 염두에 두고 대인 마크와 고공전에 능한 왼쪽 윙백 요원 김동진(제니트)의 보직을 중앙수비수로 바꿔 배치한 게 첫 번째다.

김동진은 아드보카트호 시절에도 중앙 수비를 맡아본 적이 있었지만 전공은 측면이다.

김동진을 '스토퍼'로 쓴 베어벡 감독의 선택은 적절히 맞아떨어졌다.

후반 중반까지 이란의 역습을 효과적으로 차단해낼 수 있었다.

대신 이영표(토튼햄)는 수비 부담을 덜고 왼쪽 측면에서 맘놓고 오버래핑을 할 수 있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위치는 2기 베어벡호 전략의 핵심 포인트였다.

베어벡 감독은 예상과 달리 박지성을 왼쪽 윙포워드에 배치했다.

박지성의 카드는 '득실이 반반'이었다.

소속 팀 경기나 월드컵 때도 측면에서 뛰었지만 박지성은 대표팀에 들어오면 중앙을 휘젓는 스타일이다.

중앙을 파고들면 전체적으로 상대 수비진을 뒤흔드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중앙의 강화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좌.우 측면에서 '편식 현상'으로 나타났다.

최진한 스포츠칸 해설위원은 "전반 내내 오른쪽의 설기현 쪽으로만 돌파가 이뤄졌다.

왼쪽 측면이 죽는 바람에 공격 루트의 다양성이 실종됐다"고 지적했다.

설기현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드리블로 측면을 여러 번 돌파했기에 망정이지 오른쪽 사이드도 상대 수비에 막혔다면 돌파구를 열지 못할 뻔 했다.

김학범 성남 감독은 "베어벡 감독이 박지성을 활용한 것은 히딩크 감독이 PSV 에인트호벤에서 쓰던 전략과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박지성이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김두현(성남)과 확실한 역할 분담이 되지 않은 면도 재고해볼 대목이다.

전체적으로 압박은 괜찮았다.

더블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수원)과 이호(제니트)는 이란의 공격이 시작되는 라인부터 적극적으로 볼을 차단해 전체적으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베어벡호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마무리였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베어벡 감독은 후반 30분 이후 김두현, 송종국(수원)을 빼고 이을용(서울), 조원희(수원)를 투입해 '굳히기'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후반 막판 수세에 몰리는 결과를 낳았다.

김영광(전남)을 수문장으로 선택한 것은 그동안 부상으로 뛰지 못한 이운재(수원)의 컨디션을 감안한 것이지만 결국 최종 수비라인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는 뼈아픈 실책을 야기하고 말았다.

(서울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