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根 < 명지대 교수·경제학 >

의사결정의 속도가 기업의 명운(命運)을 가른다.

삼성전자의 성공요인으로 '속도경영'과 '투자선점'이 지목되고 있다.

소니의 분석이다.

속도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기업뿐만 아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경제적 아젠다(agenda)의 의사결정 속도가 느린 국가의 경쟁력이 높을 수 있을까.

생보사 상장 논의는 올해로 17년째이다.

'이해관계자의 이해반영' 이라는 포퓰리즘적 접근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보사 상장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2005년 말 현재 삼성생명은 자산규모에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 이은 3위 금융사이고 대한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8,9위이다.

이 같은 규모의 회사가 상장되지 않은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연못 속에 고래를 가둔 셈이다.

비상장 상태로는 외국계 보험사와의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한생명의 공적자금 회수,삼성자동차 부채 해결도 절박(切迫)하긴 마찬가지다.

생보사 상장을 둘러싼 쟁점은 유배당 계약자에 대한 이익배분의 문제로 좁혀지며,생보사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상반된 논리전개가 가능하다.

'이익배분론자'들은 한국의 생보사들은 '무늬만' 주식회사였지 실제적으로는 '상호회사(相互會社)'적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상장차익을 배분할 때 '계약자 몫'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서 30년 동안 유배당 보험 상품만 판매해 왔으며,생보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주와 계약자가 경영상 위험을 공유해 왔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의 근거는 취약하다.

보험상품이 유배당이냐 무배당이냐가 상호회사 성격의 기준이 될 수 없다.

어떤 보험상품을 판매하느냐는 회사의 경영전략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경영위험을 주주와 계약자가 공유했다는 주장은 사실에 반한다.

IMF외환위기 때 생보사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생보사 주주들은 인수합병,감자(減資),자본금 증액 등의 경영위험을 부담했으나,계약자들은 예금보험제도 등을 통해 계약을 '보장'받아 경영위험을 부담하지 않았다.

배분론자들은 과거 생보사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와 사업비 과다지출로 계약자 배당이 과소 지급되었기 때문에, 사후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각종 세금을 탈세해 재산을 축적했을 터이니 사망시점에 과도한 상속세로 탈세액을 '정산'하라고 강제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배분론자들은 생보사의 자산형성과 이익실현은 계약자의 기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주주의 자본금은 '계약자 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니,'계약자 몫'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예컨대 "내가 그동안 은행에 예금해준 돈이 얼마인데"라는 주장을 낳는다.

계약자 돈은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보험회사의 매출액으로 잡힌다.

따라서 계약은 그 조건대로 이행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계약자 돈'은 생보사가 사적 이익을 위해 고객에게 희생을 전가하는 것처럼 사실을 미묘하게 비트는 데 이용되고 있다.

재벌이 '고객 돈'으로 계열사 지분을 취득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산재평가 차익의 계약자 배분논리 역시 취약하다.

배분론자는 생보사 자본적정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을 계산할 때,재평가 차익 중 '처리 유보된 부분'이 자본에 합산되었음을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장래의 계약자 몫'으로 규정된 처리유보분을 '현재 및 과거 계약자'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그 취지에 역행한다.

상법과 증권거래법의 원칙을 준수하고 그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생보사를 상장시키면 된다.

허상에 지나지 않는 '계약자 몫'에 얽매여 주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한국의 자본시장은 삼류로 전락하게 된다.

보험 산업의 발전과 보험 소비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서도,상장은 조속히 매듭지어져야 한다.

자문위 상장안은 충분히 합리적이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