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협상이 중단된 것은 사실 놀랄 일이 아니다.

프랑스 농업장관은 지난 5월 "(프랑스 농업의 장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보다 차라리 협상 실패가 낫다"고 말했고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G8 정상회담에서 이를 두둔했다.

이들 발언은 '유럽연합이 미국의 농업보조금 삭감을 요구하려면 그에 걸맞은 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미국측 주장에 이어 나온 것이다.

카날 나스 인도 통상장관도 "우리는 생존 문제를 협상할 수 없다"며 미국이 더 물러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브라질 외무장관 셀소 아모링은 도하라운드는 양자 협상이나 지역경제 블록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협상 결렬은 브라질에 "매우 슬픈 일"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또 협상 결렬은 무역 질서가 "정글의 법칙"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만약 세계 무역질서가 정글로 되돌아간다면 미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나라는 과연 어디일까? 작년 10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국내 농업보조금을 향후 5년간 60% 줄일 수 있다고 밝혔을 때 알렉산더 도우너 호주 외무장관은 "(협상 타결을 위해)놓쳐선 안될 절호의 기회"라고 밝혔다.

하지만 피터 만델슨 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잔 슈왑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도하라운드 협상을 위해 제네바로 떠나기 전 의회 지도자들을 만났다.

당시 이들은 미국 농산물의 자유로운 시장 접근이 보장되지 않는 협상안은 의회를 통과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또 세계은행은 "농업 관세를 대폭 삭감하는 것이 수출 보조금이나 농업 보조금 폐지보다 (무역 활성화에) 12배 정도 득이 된다"고 밝혔다.

앞서 이야기한 사실들로부터 세 가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 일본 한국 노르웨이 아일랜드 스위스 프랑스 등 몇몇 부유한 나라의 소농들이 협상 결렬의 승자라는 점이다.

일본측 협상 관계자는 "협상 결렬은 유감이지만 그로 인해 일본 같은 식품 수입국은 대대적 시장 개방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 장기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특히 일본과 한국의 지배적 산업은 패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이나 유럽에선 수입품에 붙는 관세가 2~4%인 것과 달리 브라질이나 인도에선 30%에 달한다"며 "협상 결렬이 일본에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마지막으로 도하라운드 협상이 결렬됨에 따라 자유무역협정(FTA)같은 양자 협정이나 지역 경제블록 추진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은 주의해야 한다.

싱가포르 칠레 호주 등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들은 미국 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대가로 달갑지 않은 조건들을 수용해야 했다.

결국 도하라운드 협상 결렬의 패배자는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란 점이 분명해질 것이다.

정리=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이 글은 미국 뉴햄프셔대학의 버나드 고든 명예교수(정치학)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무역 정글'(Trade Jungle)이란 제목으로 기고한 글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