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로 오랜 세월을 사막에서 보낸 테오도르 모노(1902∼2000)는 이렇게 썼다.

"사막에선 하루 2.5ℓ의 물,간소한 음식,몇 권의 책,몇 마디 말이면 족하다.

사막은 생략하는 법을 가르친다.

구원이란 장인적인 것,소박한 것,자급자족,예술,활기를 내포한 느림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는 아흔다섯살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은 빌린 배와 같다.

평생 배우고 인내하며 나누고 싶은 목마름과 열정을 선물한 자연에 감사한다.

과잉의 세계에서 침몰하지 않고 한결같이 나를 지켜준 내 작은 배가 자랑스럽다.

지금 나는 피안(彼岸)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렌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허허로이 살고자 했으나 운명에 순응하며 자신의 몫을 다하려 애썼던 정상궁은 세상을 떠나기 전 이런 유언을 남긴다.

"나는 궁에서만 산 것이 억울하다.

그러니 나를 구름 위에 뿌려다오! 비가 되어 흘러 흘러서 여기도 보고 저기도 보며 세상 구경이나 하고 다닐란다."

우리는 죽음을 앞두고 과연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만일 갑작스레 닥친 것이라면.중병에 걸려 큰 수술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수술에 앞서 지난 삶을 돌아보게 되더라고 털어놓는다.

만일의 경우가 떠오르면 생각나는 건 오직 하나,다행히 살아나게 된다면 지금까지와 달리 살아봐야지 하는 각오였다고도 한다.

피천득 황금찬 한말숙 전상국씨 등 문인 101명의 가상 유언을 모은 책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 화제다.

세상에 공개될 걸 알고 쓴 것이니 가릴 건 가리고 뺄 건 뺐을 테지만 그래도 생애 끝에 가장 남기고 싶은 말을 털어놓은 만큼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혹은 가슴을 치게 만든다.

매해 연말 유언을 새로 쓴다는 이도 있다.

재산이 불어나서가 아니라 묵은 유언을 읽으면서 한 해의 무사함에 감사하고 불현듯 닥칠지도 모를 죽음을 떠올리노라면 삶에 대한 자세가 한층 경건해진다는 것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유한한 것.유언이라도 미리 써보면 삶이 조금은 간추려질 것인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