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홀을 치르는 동안 드라이버를 꺼낸 것은 단 한차례. 파5홀은 반드시 버디를 챙기고 어려운 홀은 파가 목표, 버디는 보너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브리티시오픈골프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11번째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른 것은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흔들림없이 전략을 지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우즈는 이번 대회 코스가 그리 길지 않지만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타수를 지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한동안 창고에 넣어뒀던 2번 아이언을 챙겨 출전했다.

우즈의 2번 아이언샷은 낮은 탄도로 250야드를 날아가는 '스팅어샷'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명품샷.
그러나 강력하고 정확한 스윙을 구사해야 제 몫을 해내는 2번 아이언은 힘들이지 않고도 같은 비거리를 내는 5번 우드에 밀려 지난 1월 창고 속으로 사라졌다.

우즈가 올해 들어 한번도 잡아보지 않았던 2번 아이언을 꺼내든 것은 하나의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300야드 안팎을 때릴 수 있는 드라이버에 비해 50∼60야드나 비거리가 짧은 2번 아이언으로 430∼450야드짜리 파4홀 공략을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즈는 나흘 내내 파4홀에서는 고집스럽게 2번 아이언을 고수했고 결국 우승을 이끌어냈다.

최종 라운드에서도 우즈는 파5홀에서는 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3번 우드를 잡았지만 파4홀 10곳에서는 2번 아이언 티샷을 계속했다.

덕분에 우즈는 이날 티샷이 딱 1차례 페어웨이를 벗어났을 뿐이고 덩달아 그린을 놓친 것도 3개홀에 불과했다.

4라운드 내내 페어웨이 안착률 85.7%로 대회 평균 67.3%에 비해 월등히 높았고 그린 적중률(80.6%) 역시 대회 평균 66.6%를 크게 웃돌았다.

우즈가 티샷용으로 2번 아이언을 잡은데는 롱아이언을 어떤 선수보다 정확하게 쳐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었다.

우즈는 프로 무대에 데뷔할 때부터 다른 선수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신기의 롱아이언샷으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연못에 둘러싸인 그린을 향해 200야드 안팎의 거리에서 4∼5번 아이언으로 볼을 쏘아 올려 홀 옆에 세우는 묘기샷은 우즈의 전매특허.
이번 대회에서도 드라이버로 티샷한 동반 선수보다 50야드나 뒤쪽에서 그린을 공략하면서도 홀에 더 가깝게 붙이는 롱아이언샷을 자주 보였다.

2라운드 때 14번홀(파4.456야드)에서 2번 아이언으로 250야드 남짓한 티샷을 날린 우즈는 홀까지 204야드나 남아있었지만 4번 아이언을 들고 친 두번째샷을 그대로 홀에 꽂아넣는 이글쇼를 펼치기도 했다.

2번 아이언을 내세운 우즈는 그러나 현실적으로 파4홀에서 많은 버디를 잡아내기 어렵다는 전제 아래 비교적 손쉬운 파5홀 4곳은 철저하게 버디 포획 대상으로 공략했다.

파5홀에서 우즈는 4일 동안 보기는 1개도 없이 버디 10개와 이글 2개를 수확해 14타를 줄였다.

최종 스코어 18언더파 가운데 77.8%가 파5홀에서 나온 셈이다.

파4홀에서는 6개의 버디와 이글 1개를 뽑아냈지만 보기도 7개를 쏟아냈다.

한마디로 파4홀은 본전만 챙기는 곳으로 설정한 것이다.

크리스 디마르코(미국)나 어니 엘스(남아공),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등 우즈와 우승을 다퉜던 선수들도 파5홀에서 나름대로 성과는 있었지만 파4홀에서 드라이버를 잡는 대가로 잃어버린 타수가 컸다.

디마르코는 1라운드 때 7번홀(파4)에서 티샷이 빗나간 탓에 트리플보기를 해야 했고 17번홀(파4)에서는 4라운드 합계 2오버파의 부진한 성적을 남겼다.

챔피언조에서 우즈와 4라운드 동반 플레이를 펼친 가르시아도 드라이버로 때린 티샷이 페어웨이를 벗어나거나 벙커에 빠지면서 줄보기로 무너졌다.

스코어에서 '적자(赤字)'는 파4홀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파5홀에서 벌어들인 타수를 상쇄한 꼴이 된 것이다.

롱아이언의 달인인 우즈는 자신의 장기를 코스 특성에 맞춰 제대로 구사하는 영리한 플레이로 로열OB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로열리버풀링크스를 정복했다는 평가이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