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이고 특징이 없어 '성냥갑'에 비유되던 아파트가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건설업체들이 유명 예술가·디자이너와 손잡고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내부 인테리어를 패션 디자이너인 앙드레 김 스타일로 변신시키고 있다.

작년 서울 목동 주상복합 '트라팰리스'와 올해 대구 범어동 '래미안 수성'은 앙드레 김 특유의 품위있고 우아한 분위기를 살린 '네오 클래식' 스타일로 소비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앙드레 김은 '래미안 수성'의 단지 내 조경 디자인에도 참여,동·서양 황실과 비잔틴시대 교회 건축에서 즐겨 사용되던 '회랑(回廊)'을 선보여 화제를 낳았다.

삼성물산은 또 아파트의 새로운 디자인철학과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기 위해 건설업계 처음으로 디자인 마스터 제도를 도입,이돈태 영국 탠저린 사장을 디자인 고문으로 영입했다.

이 사장은 영국항공 비즈니스클래스를 디자인했으며,동양인 최초로 탠저린 공동사장으로 발탁돼 화제가 된 인물이다.

김승민 삼성 디자인실 실장은 "이 사장을 영입한 것은 건축가에게만 의존해온 아파트 디자인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의 변신은 단지 내 편의시설과 건물 외벽 등 곳곳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중견 건설업체인 진흥기업은 1999년 '그림 읽어주는 여자'라는 베스트셀러를 낸 매스미디어 아티스트 한젬마씨와 디자인 계약을 맺고 단지 내 시설과 출입구,조경 등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진흥기업은 현재 한씨의 컨설팅을 통해 아이들의 창의성과 감수성을 높이는 놀이터를 설치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 회사 전홍규 사장은 "문화(culture)와 상품(product)을 결합한 '컬덕트(cul-duct)' 개념을 도입,이달 중순 경기 용인 상하동에서 공급하는 아파트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건설은 스프레이로 건물 외벽에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지성진씨(28)와 손을 잡았다.

SK건설은 서울 등촌동 실버타운 'SK그레이스 힐'을 분양하면서 모델하우스에 지씨 작품을 선보여 방문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GS건설은 조경·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교수 등 외부 전문가 10여명으로 '자이 디자인위원회'를 결성,대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도 인테리어 트렌드를 접목시키자는 디자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해 공사 현장에 반영하고 있다"면서 "임원진도 디자인위원회 회의에 참석,다각적인 혁신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주택공사는 오는 8월 분양 예정인 판교신도시 빌라(연립주택) 3개 블록의 설계를 국제공모를 통해 미국 일본 핀란드 건축가에게 맡겼다.

주공측은 "국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형태의 서구식 외관 디자인이 선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이처럼 아파트에서도 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디자이너들의 몸값도 크게 올라가고 있다.

동일하이빌 김격수 이사는 "아파트 디자인 수요가 급증하면서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의 몸값이 2~3년 전에 비해 2배가량 높아졌다"고 말했다.

㈜현진 관계자는 "디자인 전문인력 확보 차원에서 홍익대 등 미대 출신 10여명을 채용한 상태"라며 "아파트와 디자인은 이제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