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랑 < 소설가 >

월드컵이 한창이다.

길을 나서면 붉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과 붉은 뿔이 달린 머리띠를 한 어린 아이들의 모습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책상 앞에 붙어 앉아 하루치의 소설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서면 거리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러면 나는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해낸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단골 술집으로 향한다.

내가 들어서면 그 술집의 주인은 언제나처럼 턴테이블에 오래된 레코드판을 올려놓다 말고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면 나는 손님이 거의 없는 실내를 한번 훑어본 뒤에 내 지정석이나 다름없는 자리에 가서 앉는다.

"오늘은 손님이 거의 없네요."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늘 건네는 말을 또 건네고 그러면 주인은 그저 빙긋이 웃는다.

내 앞에 맥주 한 병을 놓아주고 주인은 레코드판이 빼곡히 꽂혀 있는 장 앞으로 가서 낡은 판 하나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가 들려주는 첫 곡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다.

나는 지금도 그 날을 기억한다.

우연히 들어간 그 술집엔 손님이라고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전부였다.

여자는 바에 앉아 보드카를 마시고 있었고 역시 일행이 없었던 나는 여자와 사이를 두고 바에 가서 앉았다.

여자 앞에 놓인 보드카 병은 반쯤 비어 있었다.

"술 대신 오렌지 주스나 한 잔 시킬 생각 없어요? 술은 여기 많거든요."

여자는 반쯤 비어있는 보드카 병을 들어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여자는 내 잔에 보드카를 따라주었다.

내가 시킨 오렌지 주스가 나오자 여자는 자신의 잔에 주스와 보드카를 따라 부었다.

"그 사람하고 늘 이렇게 마셨는데… 진영씨! 늘 듣던 노래 있잖아요 한 번만 더 틀어줘요." 술집 주인은 턴테이블에 앉아 아무말 없이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여자가 늘 듣던 노래를 더 틀어달라고 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에 존 덴버의 '마이 스위티 레이디'가 들려왔다.

"레이디… 아 유 크라잉…."

여자가 가사를 흥얼거리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이 곳에서 연인과 늘 함께 듣던 노래였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가끔 그 술집을 찾아갔다.

갈 때마다 손님은 한두 명이 전부였다.

어떤 날은 때에 전 와이셔츠를 입은 중년이,어떤 날은 반백의 사내가 바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고 술집 주인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턴테이블에 앉아 그들이 듣고 싶다는 곡을 몇 번이고 들려주고 있었다.

그 술집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카슨 매컬러스의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의 등장인물들이 밤이면 모여드는 비프 브랜넌의 카페안으로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이해받지 못해 늘 외롭고 쓸쓸한 영혼들,또 다른 희망을 꿈꾸지만 출구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그런 이들이 찾아드는 카페….어쩌면 여기 앉아있는 이 사람들 또한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외롭기 때문에 위로받고 싶기 때문에 이 곳을 찾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외로워서 이곳을 찾는 것일까? 아니다.

내가 가끔씩 이 술집을 찾아오는 이유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동안에도 무리 속에서 더 외로운 존재들, 함께 있으면서도 공유할 것이 없어 더 외로운 사람들은 밤하늘을 가르며 휘황하게 터지는 저 폭죽 소리를 뒤로하고 어딘가를 찾아 혼자 걸어간다.

그들이 무리를 뒤로하고 어딘가를 찾아 헤매는 것은 아주 잠깐이라도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단지 한 곡의 노래라도 진심으로 함께 들어주는 사람,나만을 위해 늘 거기에 있어주는 누군가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