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보석을 신청했다.

비자금사건으로 구속수감된 지 한달 만이다.

변호인단은 "정 회장이 고령(高齡)인데다 지병인 고혈압이 악화되고 있고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으며 장기 공백으로 인한 경영차질이 심각해 보석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사실 지난 한달 동안 그룹총수의 부재로 인한 현대·기아차 경영차질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선 세계5대 자동차메이커로 발돋움하려던 글로벌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예정돼있던 기아차 조지아 공장,현대차 체코 공장 착공식이 무기 연기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 기회에 현대를 완전히 눌러 놓자'는 경쟁업체들의 공세를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 뿐인가.

국내 시장 역시 크게 다를 게 없다.

경기침체 탓도 없지 않다고 보지만 다른 자동차메이커들에 비해 유독 현대·기아차의 생산과 판매는 우려할 정도로 두드러진 감소세를 보였다.

더구나 외국차들의 국내시장 침투는 더욱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다.

지난해만 해도 수입차 점유율은 3.3%에 그쳤으나 올 1·4분기엔 4.3%로 높아졌고 금액기준으로는 14.5%에 이른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방마저 내줘야 할 판이다.

자동차산업의 위축은 비단 현대·기아차의 경영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사태가 좀더 이어지면 수많은 부품업체들의 경영위기로 파급되고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에 심각한 파장을 몰고 올 우려가 크다.

오죽하면 해외 언론마저 '현대차가 마비 상태에 빠지면서 한국산업의 근간(根幹)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까지 했겠는가.

재계를 필두로 각계각층에서 정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내는 것도 개인 정 회장보다는 자동차산업을 선두에서 지휘하는 최고경영자의 부재를 진정으로 걱정하기 때문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우리는 그동안 불법과 비리는 철저히 규명하되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는 그룹총수의 인신구속은 부당하다는 점을 누차 지적한바 있다.

이는 아직도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난 한달의 경영공백만으로도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재계를 비롯한 각계의 선처의견을 더이상 외면해선 안될 것이다.

법원은 어떻게 하는 것이 나라경제와 국익(國益)에 더 도움이 될지 심사숙고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