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봄답지 않게 쌀쌀한 바람이 부는 부산 횡령산 정상. 도박장으로 변한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만들어졌다.

영화 '타짜'(제작 싸이더스FNH)의 촬영 현장이다.

25일 이곳에서 밤 촬영이 진행돼 해가 떨어지기 전 비닐하우스를 만들어놓고 제작진은 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산 밑으로는 부산 시내 형형색색의 불빛이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1950~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허영만 작가의 원작 만화와 달리 영화 '타짜'는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날 촬영분은 애써 모은 돈을 한 순간에 노름으로 날린 후 타짜의 길로 접어든 주인공 고니(조승우 분)와 고니의 파트너 고광렬(유해진)이 조직폭력배 곽철용이 만든 하우스(도박판이 벌어지는 곳)에서 2억원의 돈을 따는 장면이다.

최동훈 감독은 "추석 개봉을 위해 빡빡한 촬영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밤새 촬영하고 곧바로 이동해 쉬지 않고 촬영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커다란 유리상자에 가득한 돈이 시선을 끌었다.

바닥에는 5~6개의 아이스박스에 돈이 담겨 있다.

이날 쓰인 가짜 돈이 진짜라면 60억원. 제작진은 기차에서 돈을 날리는 장면에 쓰인 돈까지 하면 80억원의 가짜 돈을 만들었다.

권정인 제작실장은 "가짜 돈 80억원을 만드는데 3천만원이 들었다"고 소개했다.

도박장 하우스인 비닐하우스 안에는 100여 명의 엑스트라가 양편으로 앉아 있다.

곽철용이 고니를 초대해 다시 한번 판을 벌였고, 타짜들의 내기 화투에 어설픈 꾼들이 돈을 거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배우 김상호와 서동수는 계속해서 속칭 '도리짓고땡' 판을 돌려야 했다.

1, 2, 3번이라 적혀진 숫자 위로 화투패 세 장이 뜨고 꾼들은 선택한 번호에 돈을 건다.

촬영을 기다리고 있던 조승우는 "이 영화를 하면서 처음 화투패를 만져봤다"고 말했다.

설마 명절에도 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우린 가족예배를 본다"며 웃는다.

실제 타짜 장병윤 씨에게 화투를 배운 조승우는 "타짜의 기질이 다분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손이 곱고 눈이 작은 게 우선 타짜의 '신체적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는 것. 눈이 작아야 표정이나 생각이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장씨는 "조승우가 섞기, 숨기기, 밑장빼기 등의 기술을 3개월 만에 연마해 역시 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밑장빼기는 약간 어색해 최동훈 감독이 손 대역을 맡기도 했다.

조승우는 화투를 난생 처음 만지는 바람에 밑장빼기 기술을 배우느라 손바닥에 물집이 돋기도 했다.

그는 "백윤식 선배님은 화투패를 섞다가 피가 나기도 했다"고 전했다.

'범죄의 재구성'에서 치밀한 플롯을 선보였던 최동훈 감독은 의외로 현장에서 콘티를 바꿔가며 촬영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김상호가 패를 나누는 장면을 즉석에서 여러가지로 바꿔가며 촬영감독에게 지시했다.

원작과 달리 천방지축형의 성격으로 변한 데 대해 조승우는 "촬영 초반 평경장(백윤식)을 처음 만나는 장면을 찍던 날 유들유들하고 능글맞게 하고 싶었다.

처음엔 콘티대로 진지한 느낌으로 찍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감독에게 천진난만하게 가보자고 했고, 감독님도 동의해 지금의 고니 성격이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평경장에게 개길 건 개기고, 욕먹어도 웃고, 할 말 다하는 고니라고 생각해달라"고 덧붙였다.

김상호와 서동수의 장면을 찍는 데만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밤 11시 무렵에야 조승우와 유해진이 말쑥한 캐주얼 정장 차림으로 노름판에서 딴 돈 가방을 든 채 비닐하우스를 나오는 장면이 촬영됐다.

두 사람 뒤로 하우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나오는 장면을 촬영해야 해 스태프들은 분주했다.

"배우 뒤로 천천히 나가라"는 조감독의 커다란 목소리가 산 정상을 쩌렁쩌렁 울렸다.

최동훈 감독은 "추석 명절에 개봉한다고 해서 다같이 화투치자는 건 아니다"라며 웃는다.

조승우는 "우리 영화가 주제가 뭐냐고 감독님께 여쭸더니 '화투 치면 이렇게 됩니다가 아닐까'라고 하시더라"며 웃는다.

조승우, 백윤식, 김혜수, 유해진을 비롯해 아귀 역의 김윤석까지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영화의 촬영현장에서 "하나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촬영중"이라고 입을 모았던 배우들의 말이 진심이라는 게 느껴진다.

(부산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kah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