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달러 약세'에 밀려 '1달러=930원선'까지 내줬던 원화 환율이 급반등세로 돌아섰다.

15일 외환시장에서 일본 엔화가 '1달러=110엔선'이 무너지고,위안화도 '1달러=8위안'이 붕괴됐는데도 원화 환율만 꿋꿋하게 10원90전이나 오르는 '나홀로 상승'을 보여줬다.

엔화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원화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2003년에 이어 다시 나타나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물론 '엔화와의 디커플링'이 이뤄진다해도 원·달러 환율도 함께 오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골드만삭스가 지난주 원·달러 환율의 800원대 진입 전망을 내놓는 등 원화환율 하락을 점치는 기관들이 아직 많다.

글로벌 달러 약세가 여전히 우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이 원화를 '나홀로 강세'라는 늪에서 탈출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다.


◆ 엔 강세는 한국 경제에 호재

원·엔 환율 상승은 국내 기업들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본 기업들과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대외 경쟁 여건이 호전되기 때문이다.

원·엔 환율이 상승하면 한국 기업들은 대일(對日) 수출을 늘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원·엔 환율이 상승(원화 약세)할 때 한국의 수출은 큰 폭으로 늘었다.

1986~88년의 '3저(低) 호황' 당시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26.1%에 달했고,엔·달러 환율이 127엔에서 94엔으로 급락했던 1994~95년에도 한국의 수출은 23.3%나 늘었다.

노무현 정부가 디커플링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10대1로 움직이던 원·엔 환율을 11대1로 끌어올렸던 2003년과 2004년에도 한국의 수출은 25%나 늘었다.

이번에 나타나고 있는 원·엔 환율 상승도 수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그 효과는 제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원·엔 환율이 860원 밑으로 내려온 것은 외환위기 이후 올해들어 처음 나타났던 현상이다.

엔화에 비해 과도하게 하락한 원화환율이 정상을 되찾는 과정일 뿐 추세적인 원·엔 환율 상승으로 단언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 아직까지는 많다.

◆ 위안화 환율 하락은 대세

중국 인민은행(중앙은행)이 고시하는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8위안 이하로 떨어진 이날 15일 세계 금융시장의 반응은 비교적 평온했다.

외신들은 8위안 붕괴를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데 대한 중국의 감사편지(thanks letter)'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오히려 중국 인민은행이 앞으로 평가절상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이냐에 쏠리고 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경제분석가인 스티븐 그린은 "현행 환율 체제라면 올해 말 위안화 환율은 기껏해야 달러당 7.8위안 선으로 떨어지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위안화 절상폭이 서방국의 기대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다만 중국정부의 환율정책에 변화의 조짐이 뚜렷하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환보유액 확충에 초점이 맞춰졌던 환율정책이 '대외부문 균형'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민은행이 이달부터 중국의 상업은행 기금관리공사 보험업체 등에 대해 해외증권투자 업무를 개방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 원·달러 환율 상승 기대 일러

원·달러 환율 상승이 추세적인 것으로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 많다.

글로벌 달러약세 현상이 확산될 경우 원·달러 환율이 한 단계 더 하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선배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핫머니가 원화 강세 요인으로 부각될 수 있다"며 "엔화와 위안화 추세를 따라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상수지는 2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무역흑자폭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경제기초체력(펀더멘털) 측면에서 봐도 원화 환율은 충분히 떨어진 상태다.

환율이 더 이상 급락할 가능성은 줄었다는 얘기다.

문제는 물가 불안이다.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위안화마저 절상될 경우 중국산 수입품의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다.

'국제유가의 가파른 상승'을 '원화 강세(원화환율 하락)'와 '저가의 중국산 수입품 증가'로 상쇄했던 물가안정의 골격이 흔들릴 경우 올해 하반기에 물가불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승윤 기자·베이징=오광진 특파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