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길을 잃은 것 같다.

하늘에는 이정표가 없으니 그럴만도 하다.

사방에 낮게 깔린 비구름도 우왕좌왕 갈피를 못잡고 있다.

먼 하늘가 여기저기엔 벌써 비가 쏟아지고 있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회색 커튼이 드리운 듯하다.

비는 어느새 눈앞에까지 바짝 다가섰다.

미니 버스 앞쪽에서 달려온 빗방울에 이어,이번에는 오른편에서부터 굵은 소나기가 휘몰아쳐 지나간다.

쌍두전차를 앞세우고 전장으로 돌진하는 히타이트 군단의 기세가 이랬을까.

서쪽 먼 하늘에 번지기 시작한 핏빛 노을이 그 옛날의 격전들을 증언하는 것 같다.


악사라이에서 네브셰히르로 향하는 해발 1000m의 고원 길. 지구는 편평한 원반이라는 우주관을 가능케 했을 법한 이 고원 일대는 숱한 세력이 명멸했던 곡절의 땅이었다. 쌍두전차와 철제 무기로 이집트 람세스2세와 패권을 다투었던 히타이트,마법의 황금손 미다스왕의 프리기아에 이어 페르시아,로마,비잔틴,셀주크,오스만 제국까지…. 바로 터키,아나톨리아 반도의 중앙 고원지대인 '카파도키아'다.

카파도키아는 기원전 6세기께 페르시아가 지배하던 당시에 생긴 작은 왕국. 터키에서 제일 긴 할리스 강의 지류 이름 또는 페르시아 말을 키우던 '말의 땅'이란 뜻이라고 한다. 지금은 희한한 바위기둥의 계곡 풍광과 거대한 지하도시로 유명한 '관광의 땅'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미니버스는 그 카파도키아의 심장부 괴레메를 향해 속도를 높인다. 바위기둥이 집중돼 있는 아바노스~괴레메~위르굽 삼각지대의 하이라이트 격인 곳이다.

차창 밖으로 간간이 눈에 띄는 주름진 땅의 모습에 미니버스 안은 탄성으로 가득하다. 파묵칼레에서 신새벽에 시작한 12시간 미니버스 여행길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가이드 세다트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웃는다. 그리고 마주한 우치히사르 언덕. 좀더 기다리라고 한 세다트의 말이 합당하다. 하늘을 향해 성채처럼 우뚝 솟아 작은 계곡을 감싸고 있는 우치히사르 언덕 풍광이 그렇게 괴이할 수 없다. 경사면 가득 둥글고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사람이 살았고,일부는 지금도 살고 있다는 증거다. 아프리카 초원의 개미집 모양으로 망루처럼 솟은 곳은 호텔이 들어서 있다. 하루의 마지막을 불사르는 노을에 한층 붉게 채색된 우치히사르 언덕 정상에서 보는 풍광이 정말 넋을 놓게 만든다.

우치히사르 언덕에 걸린 하얀 달이 아직 남아 있는 다음 날 새벽녘에 열기구를 탄다. 카파도키아를 하늘에서 내려다볼 차례다. 영국 출신 파일럿이 조종간을 잡은 20인승 열기구는 소리없이 두둥실 떠오른다. 뜨거운 공기를 먼저 채운 형형색색의 열기구들이 여명의 하늘을 유영하고 있다. 열기구는 일단 높이 솟아 카파도키아 전경을 보여준다. 넓고 편평한 땅이 함몰된 듯한 깊은 계곡들의 윤곽이 뚜렷하다. 한 계곡 아래로 내려섰다 옆 계곡으로 넘어가는 열기구 안은 이미 흥분으로 가득하다. 계곡 안쪽 갖가지 형상의 바위기둥이 눈을 의심케 한다. 마치 외계 행성의 지형을 보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위기둥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역시 사람의 손으로 다듬은 구멍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생겼을까. "카파도키아 형성의 키워드는 '침식'"이라고 세다트는 말한다. 이 일대는 원래 화산지대였다. 인근 에르지예스산(3917m)과 하산산(3263m)의 폭발로 화산재가 두텁게 쌓여 응회암으로 굳었고,그 위를 용암이 덮었다. 그 다음 역할은 물과 바람이 맡았다. 빗물은 오랜 세월 응회암 층의 부드러운 부분을 깎아 내려갔고,고원의 거센 바람은 드러난 바위기둥 사이를 돌며 마무리 작업을 했다.

땅에서 보면 카파도키아 계곡의 모습이 더욱 명확해진다. 비둘기 똥을 거둬 거름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많은 비둘기가 산다는 비둘기 계곡을 지나 멈춰선 아우를라 계곡 풍광은 맛보기. 능선에서 본 파사바그 계곡이 그 기괴한 바위의 경연장이다. 길쭉한 버섯모양의 바위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원추형 바위기둥 머리에 삿갓모양의 현무암덩어리가 얹혀져 있는 모습이 잘생긴 남근을 연상시킨다. 이곳에서는 '요정의 굴뚝'이라고도 부른다. 실제로 만화영화 '개구장이 스머프'의 주인공 요정들인 스머프네 집 형태가 이 바위를 본딴 것이라고 한다.

바로 옆 괴레메 야외박물관에는 암굴교회가 보존돼 있다.

카파도키아 일대에 남아있는 200여 개의 암굴교회 중 10여개가 이곳에 모여 있다.

1~4세기 로마의 박해를 피해 이 일대에 은둔하며 공동체 생활을 이끌었던 성 바질이 그 핵심 인물이었다고 한다.

'성 바바라 교회''뱀교회''샌달교회''암흑교회''사과교회' 등 각 교회 내부의 벽과 천장에 성화가 남아 있다.

예수의 행적이나 성경의 내용을 옮긴 것들이다.

샌달교회의 벽화에는 이 지역 이슬람 술탄의 모습도 보여 눈길을 끈다.

성화는 많이 훼손돼 있다.

특히 각 인물의 눈 부위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긁힌 상태다.

8~9세기 우상파괴 시대의 흔적이라고 한다.

벽화의 그림물감을 긁어내 물에 타 먹으면 성스러워진다는 믿음도 횡행했었다고 한다.

야외박물관 매표소로 가기 전 주차장 인근의 토칼르교회에 그나마 잘 보존된 비잔틴 시대의 벽화가 남아 있다.

이어 들른 데브란트계곡은 하이커의 천국. 버섯바위 사이로 트레킹 길이 잘 나 있다.

카파도키아는 지상의 버섯바위 계곡지형뿐만 아니라 그 규모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지하도시로도 신비로움을 더한다.

데린쿠유와 인근 카이마클르의 지하도시가 유명하다.

이 지하도시는 히타이트 시대부터 있었던 피난처가 차츰 확대된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세력의 충돌이 거듭됐던 지역이란 점에서 보면 그 해석에 머리가 끄덕여진다.

그 사실을 입증할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초기 기독교 시절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인들이 이곳에 숨어들어 예배를 올렸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데린쿠유의 지하도시는 미로처럼 얽혀 있다.

통로는 아주 좁고 낮다.

키 큰 사람은 허리를 숙이고,뚱뚱한 사람은 옆으로 서야 간신히 지날 수 있다.

지하 1층 첫 공간은 주방으로 쓰였던 것 같다는 설명이다.

가운데가 화덕처럼 둥글게 패여 있다.

가축을 기른 흔적도 남아 있다고 한다.

연기가 지상으로 빠져나가지 않게끔 연기 전용 통로와 공간을 둔 솜씨가 절묘하다.

방과 방을 잇는 통로 끝마다 연자방아 모양의 커다란 돌이 놓여 있다.

안에서 밀어 굴려 통로를 막아버리는 식으로 적의 침입을 저지하기 위한 장치다.

방과 방 사이는 또 의사통을 위한 작은 구멍으로 연결돼 있다.

20층(8층까지만 개방),80m 깊이의 맨 아래층까지 이어진 수직 공기통로에 손을 내밀면 공기의 흐름이 감지된다.

아래로 이어지는 통로는 갈수록 복잡해진다.

자칫 길을 잃을 정도다.

연자방아 모양의 돌로 통로를 막지 못해 초기 저지선이 뚫리더라도 순식간에 함락되지 않겠다.

그리스신화 속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인신우두(人身牛頭)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기 위해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들고 들어섰던 미궁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이카로스의 전설을 낳은 장인 다이달로스의 그 신기가 녹아있는 것 같다.

그러나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빨간 화살표(아래)와 파란 화살표(위)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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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자유.현대드림 등 터키 일주여행 안내 ]

터키의 정식국명은 터키공화국이다.

아시아 대륙 서쪽 끝 아나톨리아 반도(97%)와 유럽쪽 트라키아 반도(3%) 일부에 걸쳐 있다.

수도는 중북부의 앙카라. 공용어로 터키어를 쓰고 있다.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3.5배,인구는 6700만명. 80%가 터키인이며 99%가 이슬람교도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비해 종교적 규율 적용에 엄격한 편이 아니다.

한국인을 보면 누구나 '칸카르데시'(혈맹)라고 할 정도로 우호적이다.

통화 단위는 예테르(예니터키리라). 요즘 환율은 1달러당 1.4예테르 안팎. 한국보다 7시간 늦다.

3월 말에서 10월 말까지 서머타임을 적용,6시간 늦다.

220V 전기를 쓴다.

터키항공(02-777-7055,www.turkishairlines.co.kr)이 매주 월.목.토요일 3차례 이스탄불 직항편을 운항한다.

오후 1시20분 인천공항을 출발한다.

이스탄불에서는 수.금.일요일 출발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40분.

카파도키아의 중심 괴레메는 카이세리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들어간다.

이스탄불에서 카이세리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정도. 카이세리에서 괴레메까지 버스로 1시간 걸린다.

버스여행 프로그램이 잘 발달돼 있다.

이즈미르,에페소스 등 지중해 연안도시를 구경하고 파묵칼레와 코니아를 거쳐 괴레메로 들어가는 일정을 따르는 이들도 많다.

데린쿠유 인근의 수제 카펫 학교인 '윅셀 할리'도 찾는다.

터키가 자랑하는 이중매듭의 초고가 수제 카펫 '헤레케'를 살 수 있다.

카이세리로 가는 길목에 터키석과 도자기를 파는 엘마아트센터가 있다.

우치히사르의 '예메나' 같은 지하 암굴식당이 꽤 있다.

밸리댄스와 메블라나댄스 등을 즐기며 터키 전통음식인 케밥을 맛볼 수 있다.

하나투어(02-2127-1306)는 '터키 그리스 일주 10일' 상품을 내놓았다.

200만~250만원. 자유투어(02-3455-0156),현대드림투어(02-3014-2333)는 '터키 일주 8일' 여행을 안내한다.

이스탄불~카이세리~카파도키아~코니아~안탈리아~파묵칼레~에페소~쿠사다시 일정을 따른다.

130만~150만원. 터키 문화관광부 한국홍보사무소 (02)776-2062

괴레메(터키 카파도키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