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기를 앞에 둔 사람들이 막대기 모양의 컨트롤러를 휘두르자 화면속의 캐릭터가 테니스 라켓을 스윙해 공을 주고받고검으로 몬스터의 몸을 벤다"
이처럼 '눈으로 보는 대신 몸으로 느끼고 즐기는 게임'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눈 앞에 다가왔다.

닌텐도가 차세대 게임기 '위(Wii)'를 통해 컨트롤러를 휘둘러 하는 게임을 선보이고 소니 플레이스테이션3(PS3)도 움직임 감지 기능을 갖추면서 체감형 게임이 세계 게임 시장의 큰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10일(미국 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막된 E3 게임전시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닌텐도의 위 게임기다.

27개의 플레이가 가능한 위 게임을 출시한 닌텐도 전시장은 게임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늘어서서 몇 시간씩 기다린 끝에 게임을 해보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위에 주목하는 것은 그래픽의 발전에 치중하는 다른 게임기나 PC와 달리 컨트롤러의 변신을 통해 전혀 새로운 게임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여러 개의 버튼과 레버의 조작법을 익혀 플레이하는 다른 게임과 달리 공을 치려면 직접 컨트롤러를 휘두르고 총을 쏘려면 컨트롤러를 들어 직접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는 단순하고 직관적인 조작법으로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

실제로 9일 열린 닌텐도의 언론 발표회장에서 주최측이 위 플레이 경험이 전혀 없는 청중을 한 명 무대로 불러 테니스 게임을 시키자 큰 어려움 없이 곧바로 공을 받아치고 즐겁게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은 "우리 목표는 전체 게임 인구를 늘리는 것으로 이는 게임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우리는 위의 컨트롤러로 게임과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사실 지난 20여년간 게임기의 표준이었던 버튼과 레버 대신 완전히 새로운 조작법을 채택하는 것은 게임업체로서 큰 모험이다.

게다가 현재 알려진 위의 하드웨어 사양이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옛 X박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그래픽에서 X박스360, PS3 등 경쟁 제품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갈수록 높아지는 게이머들의 눈 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닌텐도가 이런 모험을 감행하는 근거에는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의 경험으로 얻은 든든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2004년말 나온 DS는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1천600만대 이상이 팔리는 인기를 얻고 있으며 특히 액정을 밝게 한 새 버전 DS 라이트는 3월 일본에서 출시돼 두 달만에 127만대를 팔아치우고도 물량이 없어 못 파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DS용 게임 소프트웨어(SW)의 성적으로 일본 게임잡지 패미츠(패미통)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올해 1∼4월 DS용 SW가 총 849만장이 팔려 PS2용 SW를 제치고 전체 게임 SW 판매량의 46.8%를 차지했다.

또 5월 첫째주(1∼7일) 일본 게임 SW 판매순위 정상에 '테트리스DS'가 오른 것을 비롯해 1∼10위에서 닌텐도가 출시한 DS용 게임이 7개를 차지해 사실상 일본 게임시장을 닌텐도가 DS로 '접수'한 듯한 핵폭탄급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DS는 같은 시기 나온 경쟁 제품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보다 그래픽 성능이 현격히 떨어져 당초 '아이들이나 할 게임기'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터치스크린을 이용한 직관적인 조작방식을 통해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특히 'DS 태풍'의 진원지로 꼽히는 게임은 개 육성게임 '닌텐독스' 시리즈와 '뇌를 단련하는 어른의 DS 트레이닝' 등 이른바 '뇌 단련 게임' 시리즈로 각각 600만장, 400만장 이상의 세계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닌텐독스는 게이머가 개를 쓰다듬는 등 여러 행동을 터치스크린을 통해 하면서 개를 기르는 게임으로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뇌 단련 게임은 게이머가 머리를 쓰는 간단한 미니게임을 하고 결과에 따라 뇌 연령을 측정해 보여주는 게임으로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 게임이 직관적 조작방식을 통해 게임 비(非)이용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그래픽 성능에 대한 집착 대신 게임의 본질인 '재미'에 집중한 닌텐도식 '블루오션' 전략이 멋지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미 DS의 성공에서 입증된 전략을 위로 재현하려는 닌텐도의 행보에 힘이 실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이 E3에 모인 게임업체들의 반응이다.

DS와 마찬가지로 위의 낮은 그래픽 성능도 개발비를 PS3, X박스360보다 매우 낮추는 장점이 있어 게임 그래픽의 발전과 함께 덩달아 뛰는 개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개발사들에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전망도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닌텐도가 DS에 이어 위로 '몸으로 느끼는 게임' 시대를 선언하자 소니도 PS3의 컨트롤러에 움직임 인식 센서를 탑재해 컨트롤러를 기울이고 휘둘러 게임을 조작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비록 위를 의식해 급조된 면이 있고 진동은 물론 소리까지 내는 위의 컨트롤러와 달리 진동 기능이 삭제되는 등 기능이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으나 이도 제대로 활용될 경우 창조적인 게임 플레이를 제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올해 말 나란히 나오는 위와 PS3의 성적에 따라 체감형 게임이 '대세'가 될지 결판 날 것으로 보여 출시 이후 이들 게임기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 지 주목된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j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