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노동운동은 아직도 이데올로기와 투쟁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과격한 방식을 동원한 전투적 조합주의에 매몰돼 있다.

마치 전쟁을 방불케하는 투쟁방식은 선진국 노동현장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이 땅에서는 아직도 그 위력를 떨치고 있다.

분신자살과 고공농성,화염병 쇠파이프 각목 등을 동원한 파괴적 행위는 한국 노동운동을 특징짓는 행태들이다.

과격 노동운동은 '노동권력'을 낳으며 채용비리,이권개입,과다한 노조전임자 등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기업들은 노동권력의 집단이기주의와 고임금,노동시장 경직성을 견디지 못해 중국 인도 동남아 등지로 빠져 나가고 있고 외국인들은 투자처를 제3국으로 돌리고 있다.

엊그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노사관계 경쟁력은 61위로 꼴찌였다.

비정규직이 전체 근로자의 절반을 넘는 상황에서 투쟁제일주의는 사회적 자본이 척박하고 공동체의식이 빈약한 우리사회를 더욱 갈라서게 할 가능성이 많다.

과거 진보적 노동운동가였거나 친노(親勞)세력이었던 많은 인사들이 한국의 노동운동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제 한국의 노동조합은 통제받지 않은 막강한 권력과 무책임한 독점세력으로 지목되면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노조가 변해야 기업도 살고 나라도 산다.

한국의 많은 노동조합이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아직도 일부에서는 20세기의 좌파적인 성향과 밀어부치기 식의 파업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과거 관행에 안주하고 있다가는 기업도 하루 아침에 문을 닫을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기업환경이 변했으면 노조도 마찬가지로 변해야 한다.

때 마침 오랫동안 노동현장을 취재해온 한국경제신문 윤기설 노동전문기자가 '제5의 권력'(한국경제신문사)이란 책을 통해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폐해를 사례 중심으로 집중 분석했다.

노동권력을 등에 업은 노조비리 실상과 투쟁 만능주의에 물든 파업문화,과다한 노조전임자,투쟁을 부추기는 좌파학자들의 행태,민주노총 내 계파다툼,과격한 시위문화 등을 현장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권력화된 노동운동을 다양한 사례와 시각으로 밀도있게 파헤친 책이다.

또 좌파 행동주의에 빠지거나 잘못된 운동노선을 걷는 세력들을 비판하고 해외 모범사례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미국 등 선진국 노동현장의 변화 흐름을 현지 취재로 묶은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서 사용자가 무노조 캠페인을 벌일수 있다는 점,오랫동안 좌파정책을 펼쳐온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서 효율과 이윤극대화를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는 점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춘투가 없어진 배경과 4년 연속 최대수익을 올리고도 임금을 동결한 도요타 노사모델,경제위기를 노사합심으로 극복한 네덜란드,아일랜드식 모델 등에 대한 내용은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본격적인 협상철에 맞춰 나온 이 책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기에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272쪽,1만3000원.

이상윤 연세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