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규 < 한국외대 교수.아랍어 >

최근 유가가 배럴당 70달러선을 넘나드는 등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중동이슬람세계가 다시 주목대상이 되고 있다.

중동은 우리나라 에너지의 80% 이상을 공급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래 한국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재도약의 기회를 제공해준 중요한 시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오일쇼크 이후 대중동진출 열기가 식기 시작해 현재 중동은 우리의 주력 시장이 아닌,틈새시장 내지 대체시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의 대중동진출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데에는 현지 문화와 정서에 무관심하고 장기적 안목의 재투자 등 현지화 전략에 소홀했던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10~20년 동안 중동이슬람세계는 다음과 같은 요인으로 인해 급격한 변화와 함께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중동은 세계 최대의 석유 부존 지역일 뿐만 아니라 최후의 생산지라는 점에서 그 위세를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100년 이상의 가채연수를 가진 중동 산유국들만이 향후 지구상의 유일한 석유 생산지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중동은 경제개혁과 개방,탈(脫)석유경제를 통한 변신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막대한 오일머니가 석유가스 관련 시설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투자되면서 두바이 같은 새로운 성공신화가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셋째,중동시장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아프리카,유럽,중앙아시아를 잇는 교두보로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최근 5년간(2000~2004년) 중동으로 유입된 오일 머니는 총 1조500억달러에 달한다.

2005년도 한 해 동안 주요 석유수출 국가들이 벌어들인 오일머니는 3800억달러에 달했는데,이는 1980년 2차 오일쇼크 당시의 1970억달러(현재 가치로 환산된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러한 막대한 오일 머니에 힘입어 민간부문 수입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향후 10년간 1조달러가 넘는 오일머니가 인프라 건설을 비롯해 금융,IT 등 여러 분야에 투자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예상되는 제2 중동붐은 70~80년대의 그것보다 규모가 더 크고 역동적일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경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는 새로운 진출 전략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중동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우선돼야 할 것이다.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언어교육은 중동진출의 필수조건이다.

미국이나 서구기업의 하청업자로 중동진출을 시작한 초기,우리는 현지인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은 도로건설 등 단순 토목공사를 주로 했기 때문에 현지문화와 언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달리 서구기업의 하청업자가 아니라 당당한 경쟁자로 위치가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자재와 인력고용을 의무화하는 현지화(Localization) 규정과 턴키나 BOT(Build-Operate-Transfer) 등으로 수주형태도 변하고 있어 현지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중동지역은 우리와 문화적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다.

식민지배의 뼈아픈 경험,혈연중심의 공동체 의식,어른 존경,좌식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을 서양으로 착각하고 서양식 접근방식으로 중동시장에 진출해 겪었던 과거의 숱한 시행착오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21세기의 중동은 어느 곳보다 역동성이 넘치고 성장 잠재력이 높은 곳이며,아랍어라는 언어와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결속된 단일 문화권이다.

따라서 한 나라에서의 성공은 곧바로 옆 나라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가 제2의 중동붐을 기대하기에 앞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 이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중동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