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없다면 연세대가 있겠습니까? '적'이 아니라 우린 '선의의 경쟁자'지요."

어윤대 고려대 총장이 3일 영원한 '맞수' 연세대를 찾았다. 어 총장은 이날 '글로벌 리더십-대학의 미래'라는 주제로 연세대 리더십센터가 주최한 제37차 리더십 특별강연의 초청강사로 나선 것.고려대 총장이 연세대에서 강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연세대 상경대학 강당에는 400여명의 학생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몰려드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어 총장은 이날 강연이 연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만큼 은근히 연세대와 고려대 간의 라이벌의식을 드러내 강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등록금이 비싼 USC(서던캘리포니아대학)가 교육의 질을 높여 같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UC버클리를 앞섰다는 대목에서 "USC는 정창영 연세대 총장이 석·박사학위를 받은 학교인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다가 점점 좋은 학교가 됐다"며 "연세대도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 학생들의 웃음을 이끌어 냈다.

또 두 학교 간 연례 스포츠행사를 '고·연전'이라고 언급,"지난해 패해서 얼굴 들고 다니기가 힘들었는데 올해는 꼭 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 총장은 "연대는 송도에 캠퍼스를 조성할 만큼 돈이 많아 부럽다"며 "특히 신촌 캠퍼스 내 총장 관사가 너무 좋아서 우리 학교에도 얘기해 봤는데 통하지 않더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최근 고대가 글로벌화에 적극 나선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두 학교의 발전 전략이 어느 시점에서는 수렴될 것"이라면서도 "다만 스피드와 방향이 다르다"고 말했다.

한편 어 총장은 이날 강연에서 대학들의 재정부족과 국제 경쟁력 향상에 대해 언급하면서 등록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고려대 총장이 등록금 인상으로 학교측과 마찰을 빚고 있는 연세대 학생들을 직접 설득한 셈이다.

현재 일부 연세대 학생들이 '등록금 투쟁'을 이끌며 한 달여 이상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다.

어 총장은 "등록금 문제를 왜 학교에만 얘기하느냐"며 "청와대(정부) 앞에 가서 말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연세대나 고려대의 등록금이 비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학교에 돈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분이 기획처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하버드대의 발전기금이 24조원이나 되는데도 정부 지원금이 전체 예산의 17%"라며 "연세대의 경우는 3%뿐"이라고 지적했다.

어 총장은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10~15명 수준으로 낮추고 질높은 수업을 하려면 결국 우수한 전임 교수를 더 채용해야 하는데 대학의 재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연세대는 현재 교수당 학생 수가 28명가량인데 이를 절반으로 낮추려면 교수 수도 3000명으로 두배 늘려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어 총장은 이어 "1950~70년대 말까지 미국 정부가 천문학적인 연구개발(R&D)비를 쏟아냈고 이 중 70%가 대학으로 흘러들어왔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 비율이 30% 수준"이라며 "정부가 대학을 못 믿어 직접 산하 연구소를 차렸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