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을 훨씬 넘는 인수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대우건설 매각 본 입찰을 앞두고 인수 의향 업체 주변에 정체불명의 '괴자금'들이 난무하고 있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지하에서 떠도는 비실명자금을 산업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게 비밀리에 정부의 양해를 얻어 100대 기업에만 빌려준다는 정책자금부터 듣기에도 생소한 유대인 '홀로코스트 펀드'에 일본·영국·캐나다 등 글로벌 사모펀드,100여명의 큰손(전주)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만들었다는 사채 펀드까지 괴자금은 실체는 없지만 종류는 다양하다.

미국 재무부 채권을 빌려주겠다는 '낯익은' 제의도 있다.

업계에서는 줄잡아 100여개 팀의 브로커들이 제안하는 괴자금은 저마다 2조~3조원 이상으로 최대 10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외환위기 당시 기승을 부리던 점 조직 형태의 금융 브로커들이 최근 대우건설 등 인수·합병(M&A) 시장을 겨냥,다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연리 3~4%에 10년 장기 분할 상환이라는 귀에 솔깃한 조건을 제시하며 인수자금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기업들에 공공연하게 접근하고 있다.

실제 대우건설 인수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대주홀딩스 김우일 사장은 "인수전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20여 차례에 걸쳐 각종 금융 브로커들이 접근해 직접 만난 사실도 있다"고 전했다.

김 사장은 "이들 중에는 변호사,교수,시중은행 지점장,회계·법무법인 관계자는 물론 연예인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도 꽤 많았다"고 밝혔다.

대우건설 인수전에 참여하고 있는 A사 실무진도 "이런 저런 비공식 경로를 통해 회사 고위층과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창두 대우건설 노조위원장도 "자금을 대주면 대우 우리사주조합이 직접 인수에 나설 의향이 있느냐며 의사를 타진해온 브로커들도 있었다"면서 "자산관리공사가 인수자금 규모를 크게 높여 자금 확보가 어려운 일부 업체들이 혹여나 이 같은 출처불명의 자금을 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괴자금들은 보통 빌려주는 자금의 5%를 먼저 떼고 20%에 해당하는 현금을 담보로 예치하는 등의 조건을 붙인다.

괴자금들은 이 과정에서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고의적으로 까다롭게 △기업 회장 명함 △지명원 △대표이사 인감 △어음발행 확인서 △대출 요청서 △사업자 등록증 사본 △재무제표 △국세완납 증명서 △선지급 공제각서 △회계감사 보고서 △상환계획서 등 무려 20여개의 서류를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대우건설 외에 쌍용건설 현대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등도 매각이 예정돼 있거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괴자금을 알선하는 금융 브로커들의 활동이 더욱 극성을 부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기업어음 정보제공 업체인 중앙인터빌 한치호 부장은 "실체가 없는 유령자금일 경우 담보어음만 날리고,자금을 빌려준 뒤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