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공무원들과의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중 하나가 '연금개혁' 문제다.

지난달 31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과 함께 특수직 연금(공무원·군인·사학연금) 개혁도 필요하다고 발언한 뒤부터 새로 생긴 풍속도다.

술자리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때면 으레 이들의 반응은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극소수의 격렬한 반대와 적극적인 지지,그리고 대다수의 '어색한 침묵'이 그것이다.

반대자들은 분노에 찬 '협박' 형태로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표출한다. 사석에서 만난 한 직업군인은 "군인들의 국가에 대한 공헌을 우습게 안다"며 "유 머시기가 맛을 덜 본 모양"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일부 전국공무원노조 노조원들이 과천 청사앞에서 집회를 갖고 "유 장관의 공무원연금법 개악 망언을 규탄한다"며 그의 사퇴를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부에선 '자폭하라'는 말도 튀어나왔다.

반면 한편에선 "나도 공무원이지만 맞는 얘기 아니냐"며 "쉽지 않겠지만 국민연금을 개혁하려면 당연히 다른 연금도 함께 개혁해야 한다"고 유 장관을 두둔하고 있다.

문제는 '침묵'하는 다수인 것 같다. 대부분 공무원들은 술자리든,식사자리든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만 나오면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닫는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국민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주장하던 복지부 관료들도 "그럼 공무원연금은요?"라고 물으면 이내 말꼬리를 내린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도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지요"라고 할 뿐 더 말을 보태지 않는다. 한마디로 '개혁하면 어쩔 수 없고,그러나 안되면 더 좋고'라는 식이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의 공적연금을 개혁하는 일은 급속한 노령화로 향후 세대가 떠안게 될 천문학적인 재정부담을 미리 덜어주려는 취지의 '선제적 대응'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 세대와 후 세대간 부담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작업과 함께,동시대 계층간 부담도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대다수 공무원들이 '나만 빼고…'식의 사고를 버리지 않는 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연금개혁 논의에 진전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박수진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