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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에] 묘지산책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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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별아 < 소설가 >

    어린 시절 뒷동산의 나지막한 무덤들은 동네 꼬마들의 즐거운 놀이터였다.

    나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무덤가에서 숨바꼭질과 소꿉장난을 하며 놀았다.

    떼를 입혀 잘 관리한 무덤들은 햇볕 아래서 꼭 그 주인들이 생전에 살던 소박한 초가집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묏등을 타고 미끄럼질을 하고 무덤 사이를 들뛰며 술래잡기를 하는 우리 곁에선 새가 울고 꽃이 피었다 졌다.

    동물원이나 식물원에서 보는 관상용이 아니었기에 그것들은 이름 모를 새이거나 이름 모를 꽃이라도 상관없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놀이터를 빌려준 사자(死者)가 누구인지도 아랑곳없었다.

    그들은 충분히 넉넉하고 다정했다.

    그때의 추억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묘지를 찾는 일을 즐긴다. 동작동 국립묘지나 수유리 4·19묘지,합정동 외국인묘지는 별다른 볼일 없이도 자주 찾는 곳이다.

    파리 여행은 발자크와 쇼팽과 이사도라 던컨과 오스카 와일드가 묻힌 페르라쉐즈 묘지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모파상과 보들레르가 묻힌 몽파르나스 묘지에 대한 기억으로 오롯하다.

    인도의 타지마할도 알고 보면 무굴제국의 영화를 보여주는 죽은 자의 집이고,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우솔레움 역시 무덤기념물이다.

    특별한 행사나 명절이 아니라면 묘지만큼 조용하고 호젓한 곳이 다시없다.

    꽃놀이를 한다,무얼 한다 해서 사람에 치일 필요도 없고 사람들끼리 부대껴 빚어내는 소음이나 사고 따위도 없다. 산 사람들보다 죽은 영혼들과 어울리는 편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다.

    꺼림칙할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경건하게 생각해 미화하거나 동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나는 천천히 묘지를 산책하며 두런두런 유령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당신들은 이미 죽었고 나는 아직 살아있다고 쓸데없는 우월감을 갖지 않기에 그들은 함께 산책하기에 더없이 흔연한 벗이다.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북아메리카의 작은 도시다.

    이곳의 봄은 수선화와 튤립과 함께 시작된다. 오늘도 아침 산책길에 집에서 멀지않은 공동묘지를 한 바퀴 돌았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시든 꽃을 수거하는 미화원 말고는 참배객이라곤 없었다.

    누군가의 장례식이 있는지 초록색 벨벳을 씌운 의자 여덟 개가 천막을 씌운 구덩이 앞에 놓여 있다. 붉고 노란 꽃들이 만발한 묘지 사이를 비석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걷는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헬멧에 흙을 부어 꽃을 심고 묘비 위에 오토바이를 타고 찍은 사진과 음악 CD까지 붙여놓은 어느 멋들어진 아저씨의 것이다. 그는 웃음과 맥주,그리고 블루스 음악을 사랑했다고 한다. 가만히 속삭인다. 즐거운 삶이었고,멋진 죽음이네요.

    부러워요….

    나는 아직도 님비현상을 빚어내는 '혐오시설' 중에 왜 납골당이나 장례식장이 포함돼 있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동네에 들어서면 왜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인지,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 뒷마당에만은 안 된다는 이기심을 드러내는 일이 어찌나 당당한지 이해하기 힘들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 맞은편엔 병원과 요양시설이 있다. 무심히 다니다 어느날 자세히 살펴보니 말기 암환자와 불치병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이다. 공동묘지,그것도 애총 근처에는 또 다른 초등학교가 있다. 교실에선 무덤 위에 꽂혀 돌아가는 바람개비도 보일 것이다.

    그래도 그걸 두고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 운운하는 소리는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삶이 본능이라면 죽음도 본능이다.

    누구도 그 지당한 자연의 이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모두가 언젠가 홀로 돌아갈 그 곳을 생각하면 악다구니치는 일상의 복마전도 조금은 시시해지고 조금은 견딜 만하다.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삶의 문제를 기피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죽음이? 아니면 삶이? 무덤 속의 벗들은 그런 질문 따위조차 소용없다고 한다.

    그들의 너그러운 침묵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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