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외환은행의 매각을 위해 실적이 조작된 것은 물론 법규정까지 무시됐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어 '불법 매각'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감사원이 당시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이 8%를 넘었다고 잠정 추산한 가운데 실적 조작과 위법 사실까지 드러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당초 외국 투기자본에 대한 '헐값 매각' 의혹으로 시작된 논란이 금융당국과 외환은행의 공모에 의한 '불법 매각' 의혹으로 번져가는 양상으로, 이에 대한 감사원과 검찰의 결론이 주목된다.

◇ 외환카드 실적 조작 의혹

외환은행이 지난 2003년 7월 금융감독원에 보낸 팩스 5장에는 외환카드의 부실규모에 따라 BIS비율이 최저 3%대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포함됐다.

외환카드 실적에 따라 BIS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인데, 실제로 이후 외환카드의 장부상 대손충당금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 매각을 사후에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13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 11월 외환카드의 대손충당금은 5천255억원 규모였으나 한달뒤인 12월말에는 1조4천211억원으로 한달만에 무려 9천억원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2003년 6월부터 11월까지 대손충당금 적립규모가 한달에 679억~1천427억원씩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폭이다.

이처럼 대손충당금이 급증함에 따라 외환카드의 순손실은 2003년 6월말 2천773억원에서 12월말에는 1조1천531억원에 달했다.

이는 결국 연말 외환은행의 BIS비율이 6% 아래로 떨어져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외환카드의 회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외환카드 합병을 4개월이나 앞두고 있었던 2003년 12월에 충당금을 대거 쌓지 않았다면 2003년말 9.32%였던 외환은행의 BIS비율은 10%를 크게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은행의 BIS 비율을 1% 떨어뜨리는 데 4천250억원의 부실이 적용되는 점을 감안하면 12월의 외환카드 충당금은 2% 이상 떨어뜨릴 수 있는 규모다.

최근 재정경제부, 금감원 등의 고위관계자들은 외환은행 BIS비율 논란에 대해 "당시 외자유치가 없었다면 외환카드가 부도나고 외환은행의 BIS비율도 2003년말 4.4%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 2002년말 이후 카드 연체율이 급등했기 때문에 대손충당금이 크게 늘어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당시 국내 카드업계 전반의 상황도 극도로 나빴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법 규정도 무시..끼워맞추기(?)

외환은행의 BIS비율이 6%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는 변명을 위해 외환카드의 부실규모를 억지로 늘렸다는 의혹은 부실금융기관 지정과 관련한 법규정에 끼워맞추려 했다는 지적으로 연결된다.

즉, 론스타로의 매각을 사실상 확정한 마당에 은행의 BIS비율이 6% 아래로 낮아졌을 수도 있었다는 근거를 카드 부실을 이용해 준비함으로써 법규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기 않기 위한 '사후 조치'였다는 것이다.

당시 외환은행을 외국 투기자본인 론스타로 매각할 수 있었던 것은 잠재적 부실기관이라는 판단에 따라 예외 조항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예외조항이란 은행법상 비금융기관이 일정규모 이상의 은행 지분을 보유할 수 없지만 부실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BIS비율 등을 근거로 예외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법규정을 살펴보면 외환은행을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할 근거가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잠재적 부실금융기관'으로 판단하는 것도 무리가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은 부실금융기관의 지정 요건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한편 구체적인 기준은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기관에 대한 매각 조치를 내리기 위해서는 BIS비율이 6%미만이거나 경영실태평가 결과 종합등급이 4~5등급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 2003년 7월 금감원이 매각을 위해 채택한 2003년말 외환은행의 BIS비율 추정치는 6.16%였으며, 경영평가등급도 3등급으로 이에 해당되지 않았다.

결국 외환은행이 2003년말 경영이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잠재적 부실기관으로 판단해 매각했지만 2003년말 BIS비율 추정치도 매각의 필요조건은 채우지 못한 셈이다.

은행법 감독규정상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하기 위한 BIS비율 기준은 이보다 더 낮은 4% 미만으로 돼 있는데 지난 2003년 6월말과 9월말 현재 외환은행의 BIS비율은 모두 9%를 넘었다.

다시말하면 2003년 7월 현재 외환은행은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할 법적 근거가 없었음은 물론이고 '잠재적 부실금융기관'으로서의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가능한 것이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은 "외환카드의 부실 부풀리기를 감안하면 론스타에서 1조750억원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외환은행 BIS비율이 4.4%가 된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아울러 법적 근거를 무시하고 해외 투기자본에 불법적으로 매각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 금감원 "미래 부실을 우려한 외자유치 결정"

금감원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금산법이나 은행업 감독규정은 실제로 나타난 수치를 근거로 부실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며 당시 외환은행에 대한 외자유치는 미래의 부실을 우려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금감원 양성용 은행감독국장은 "당시 BIS 비율 전망치를 필요로 했던 것은 말 그대로 외환은행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전망 결과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적용했을 때 6.16%로 나왔고 결국 부실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양 국장은 "당시 실제 BIS비율은 9.4%에 달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적기시정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조치를 내릴 경우 금융불안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해 자본을 들여오기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을 들여오는 방법은 기존주주가 증자하는 방법과 새로운 대주주를 영입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기존주주들이 증자를 거부함에 따라 외자유치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최현석 기자 humane@yna.co.kr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