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準) 외교관급 북한 국영회사 직원 일행이 주 헝가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 이미 국내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최근 악재가 잇따르며 미묘한 기류에 휩싸인 한반도 정세에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향후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이번 망명에 따라 나올 수 있는 북한의 반발은 안개에 휩싸인 북핵 6자회담 구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남북관계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보면 일단 남북관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에 따라 남북관계가 냉랭해지면서 다시 가뜩이나 꼬여 가는 북핵 6자회담에까지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상황의 차이는 크지만 2004년 7월 김일성 10주기 조문단의 방북이 무산된 직후 동남아 제3국에서 탈북자가 집단으로 입국하면서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된 전례를 들어 상황 악화를 우려하는 관측마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우선 이번 망명은 북핵 상황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응 방향에 따라 심각한 외교문제로 번질 경우 북한의 태도 변화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더욱이 북핵 상황은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와 위폐 공방이 불거진 이후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지난 7일 북미 뉴욕접촉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대화의 모멘텀을 상실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 해제와 위폐문제 검사를 위한 북미간 비상설 협의체 구성, 미국내 은행에 북한 계좌 개설 허용 등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를 모두 거부한 것으로 알려진 뒤로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심지어 작년 9월 미 재무부가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북한이 해외 자금줄을 조이는 의외의 성과를 본 미국 일각에서 추가 제재론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은 상황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월말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회담 재개를 위해 추가적인 미국의 대북 압박조치를 6개월간 유예해 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정부 소식통은 `6개월'에 대해서는 부인한 뒤 "북한의 진의를 테스트해 볼 필요가 있다는 흐름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지적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16일 강연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보다 더 여러가지 생각하고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개방의지를 확인해 보고 싶어 한다"며 밝힌 `미묘한 정세변화'와 맞물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대 담론이 될 가능성이 있는 `미묘한 정세변화'라는 화두 역시 북한의 진의가 무엇이냐, 다시 말해 북한이 정말 핵포기 의사를 갖고 있느냐에 출발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4월 방미를 통한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의 미-중 정상회담이 6자회담 재개 및 북핵 구도의 향배에 하나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남북관계다. 이번 북 국영회사 직원 일행의 한국 망명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흔들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남북관계는 25일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 연습을 놓고 제18차 장관급회담이 연기되고 20∼25일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는 남측 방송사의 보도 표현 문제를 마찰이 야기되는 등 순탄치 만은 않은 상황이다. 18일에는 북한 주민 5명이 탄 전마선 1척이 동해를 통해 귀순했으며, 이런 악재에 망명 건까지 더해지면서 악영향을 우려하는 시각이 커지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도 북측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지만 일단 4월로 미뤄진 장관급회담이 정상적으로 열릴 수 있을 지가 척도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6자회담의 진전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었던 남북관계가 경색될 경우 북핵 문제의 상황관리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견해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남북관계의 진전과 향후 대북 쌀 차관 제공 문제를 비롯해 남북 간에 협의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 데다 북한도 남북채널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있는 만큼 남북관계가 크게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