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현 < 서울시립대 교수ㆍ경영학 >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위기의 원인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던 시절 일종의 음모론에 대한 얘기들이 오간 적이 있다.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유대인 자본이 아시아경제 성장에 따라 급격히 부상하는 화교자본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시아에 경제 및 외환위기를 발생시켰다는 것이다.이는 검증되기 힘든 얘기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 자본은 존재하고 있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하면서 영향력을 계속 확장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KT&G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해 사외이사 한 명을 이사회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한 칼 아이칸도 유대인이다. 파운드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에서 승리해 영국중앙은행을 굴복시킨바 있는 소로스도 유대인이다. 미국의 유수한 투자은행들도 상당부분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형성하고 있는 펀드의 생태계는 다양하다. 초원에서 죽은 짐승을 먹고 사는 독수리들처럼 부실화된 기업을 공략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벌처펀드가 있는가 하면 저평가된 기업으로 판단되면 인수합병을 시도해 이익을 내는 바이아웃 펀드도 있다. 그 외에도 기업성장 초기단계에 개입해 이익을 내는 벤처펀드,그리고 부자들의 계모임같이 결성된 헤지펀드,다양한 사모펀드,그리고 공모를 통해 조성되는 뮤츄얼펀드,나아가 여러 종류의 연기금펀드 등 헤아리기 힘든 수준의 다양한 전략과 투자대상을 토대로 움직이는 펀드의 생태계가 잘 형성돼 있는 것이다. 달러화 가치하락에 따른 반사이익을 본 결과이긴 하지만 2005년 우리나라의 달러표시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7875억달러(원화표시 약 806조원)로 8000억달러에 육박한다. 세계 10위가 거의 확실하다. 막강한 제조업 덕분에 세계 톱10으로의 비약이 이뤄지고 있긴 하나 우리의 금융업 수준은 아직도 미약하고 특히 펀드에 관한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PEF로 명명되는 사모투자펀드가 출범하긴 했지만 여러 제약으로 인해 규모가 미약하다. 3월 중순 현재 개수는 16개,약정금액은 약 3조1000억원,집행금액은 4500억원대에 이르는 수준이다. 칼 아이칸이 KT&G에 대한 공개매수의사를 밝히면서 당장 동원가능한 자금이 약 2조원이라고 했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수준과 규모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이처럼 금융자본으로서의 펀드산업이 미약한 상태에서 자본이 축적된 산업자본에 대해선 재벌규제란 명목으로 출자총액제한이다,금산분리다,금융계열사 의결권제한이다 하며 손발을 묶어놓고 있으니 좋은 기업이 물건으로 나와도 우리 경제 내에서 이를 처리하기가 힘들다. 결국 주가의 저평가 현상이 나타나고 이 틈새를 아이칸이니 론스타니 하는 해외투기자본들이 파고드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실체가 열악한 지배구조 때문이란 견해도 있지만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인 KT&G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며 해외자본이 공격하는 걸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에는 돈이 없어서 움직이지 못하는 금융펀드산업,그리고 돈이 있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산업자본에 대한 지나친 규제도 한몫을 하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과정을 보면 이 같은 규제들이 초래하는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그 부작용은 극에 달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10여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동안 도입된 수많은 규제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산업자본에 대한 획기적인 규제완화와 아울러 이들 자본이 각종 펀드 형태로 금융자본화 할 수 있는 전폭적 지원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금융자본이니 산업자본이니 하는 구별을 뛰어넘어 유대인 자본이나 화교자본 수준의 강력한 범(汎) 한류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할 때이다. 이는 노령화와 저성장기조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기 전에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이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