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로 열린우리당 한명숙(韓明淑) 의원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참여정부 총리의 개념과 역할이 바뀔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참여정부의 역대 총리는 매번 다른 책임과 상징적 의미가 부여돼 왔다. 이는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분담, 국정운영, 내각 시스템 등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초대 총리인 고 건(高 建) 전 총리의 경우에는 '몽돌과 받침대'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개혁 대통령-안정 총리'라는 노 대통령의 구상에 따라 적임자를 물색한 결과였다. 노 대통령을 상징하는 개혁, 변화, 혁신 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색시키기 위한 '완충역'으로서 내각을 통할하는 총리가 필요했던 만큼 '코드 인사'가 아닌 '실용 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후 탄핵사태에 이어 2004년 4.15 총선으로 여대야소로 정국구도가 전환되자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에 있어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로 분권형 국정운영, 책임총리 등의 밑그림을 그렸다. 여기에 색을 칠한 것은 5선 의원인 이해찬(李海瓚) 전 총리의 발탁이었다. 이때부터 노 대통령은 책임총리 및 '정책의 당정일체'를 골자로 한 당정관계 등 새로운 국정운영 방안을 구체화했다. 외치(外治) 및 대통령 어젠다는 대통령이, 내치(內治)는 총리가 담당하는 새 국정운영 방식은 차곡차곡 실현에 옮겨졌고, 이를 의미하는 책임총리제는 성공적으로 착근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분권형 국정운영이라는 측면에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이는 분권형 국정운영을 대통령과 총리가 아닌, 대통령과 당의 역할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개념을 정리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동안 '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라는 구분으로 분권형 국정운영이 설명돼 왔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책임총리' 부분을 설명하기 위한 구분이라는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이병완(李炳浣) 청와대 비서실장은 분권형 국정운영을 "당 또는 국회 중심의 정치"라며 "과반수 여당이 총리를 추천해 그 총리로 하여금 당과 내각을 책임있게 꾸려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즉 노 대통령은 이 전 총리를 기용하면서 당이 국정의 중심이 되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당에 '총리 선출권'을 부여함으로써 분권형 국정운영 구상을 완결지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당과 정부, 당과 청와대 사이에 불거진 끊임없는 불협화음 및 의사소통의 문제, 당내 계파간 갈등 등은 분권형 국정운영이 진전되는데 커다란 장애가 돼온 것이 사실이다. 이병완 실장이 "궁극적인 지향은 분권형 국정운영이나, 그 과정에서 완전한 분권형 국정운영이 실현됐느냐는 별개인 것 같다"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새 총리로 유력시되는 한명숙 의원이 실제로 총리로 기용될 경우 이 전 총리와는 다른 개념 및 역할이 새 총리에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요약하자면 '책임총리'의 기조는 그대로 가되, 분권형 국정운영 방식은 약간의 수정을 주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2일 "이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새 총리도 '책임총리형'으로 가게 될 것"이라며 "하지만 분권형 국정운영이라는 측면에는 좀더 개념정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현재 청와대는 대통령의 지난 3년간의 일정을 분석중이다. 이를 통해 향후 책임총리가 유지될 필요성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책임총리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해외순방 및 정상외교, 이에 따른 준비.정리작업, 외국 정상 및 귀빈 접대, 각종 행사 및 졸업식 등 의전적 행사 등이 전체 대통령 일정의 50% 가량"이라며 "나머지 50%의 일정으로 국정현안, 대통령 어젠다 등을 챙기기에는 대통령이 너무 바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따라서 총리가 책임총리로서 역할을 어느정도 해줘야 대통령도 경쟁력 제고, 양극화 해소, 한.미 FTA 등 대한민국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구상과 업무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분권형 국정운영의 경우에는 한명숙 의원을 비롯한 총리 후보자들이 '당을 대표한다'거나 '당내 지분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당초 구상에서 후퇴 내지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지난 17일 여야 원내대표들을 만나 '대화정치'에 시동을 걸고, 이병완 실장이 '안전항해'를 누가 강조하며 "안정적 국정운영의 첫 관문이 국회"라고 밝힌게 이를 반영한다. 따라서 당을 대표하는 총리를 내세워 당과 대통령이 역할을 분담하는 분권형 국정운영 기조에서 야당의 반발이 적은 '안정형 총리'를 내세움으로써 여야를 포함한 국회와 대통령의 역할을 나누고 협조해 나가는 새 기조를 실천해 나갈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범현 기자 kbeom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