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 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을 비롯 앨빈 토플러,피터 드러커 등 미래학자들은 하나같이 향후 노동운동이 급격히 약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은 거대 공룡 같은 존재인 노동조합이 빠르게 변하는 주변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궁극적으로 소멸해 버리거나 단순한 주변세력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더구나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고 산업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예전처럼 집단행동에만 의지하고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한다면 생명력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선진국 노동현장에서는 이 같은 예측이 어느정도 들어맞고 있다. 이윤극대화와 효율성이 최대 화두인 미국과 영국 기업에서는 상대적으로 노조의 응집력이 약화되면서 노동자는 사용자의 눈치 살피기에 바쁘다. '고복지'치유를 위해 신자유주의를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노조가 권력을 포기한 채 주변 경영환경에 맞춰 나가고 있다. 노조는 근로시간연장과 감원 등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생산성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노조는 사용자와 싸우는 것보다 협력하는 게 유리하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진작부터 상생의 노사관계를 모색해온 '모범생'이다. 싸워봐야 노조에 유리할 게 없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프랑스가 신규 근로자들의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초고용계약법(CPE)'을 시행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워낙 대학생과 노동자의 반대투쟁이 거세 실제 시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프랑스 정부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해 9월 2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해 신규근로자를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신고용계약법(CNE)'을 도입할 때도 프랑스 정부는 노동계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밀어붙인 경험이 있다. 지금 경영환경이 변화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는 힘의 균형이 노조에서 사용자쪽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선진 노동현장에는 노동권력이 사라진 지 오래됐고 생존을 위한 타협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현장도 변화의 바람에 무척 민감해졌다. 한때 강경투쟁의 대명사였던 현대중공업과 KT노조의 변신은 변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한 때문이다. GM대우자동차 정리해고자 1725명이 전원 복직된 것은 노조가 파업을 자제하고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데 대한 시장의 보상이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운동은 아직도 세계적 추세와는 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많다. 노조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고 전투적 조합주의는 노동현장을 주도하고 있다.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은 우리나라 노동현장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얼마전 시민단체인 선진화정책운동이 현대자동차 노조 규탄대회를 가진 것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투쟁의 덫에 빠진 노조에 대한 경고인 셈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매출 27조원에 고용인원이 5만4000여명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이러한 국민기업을 파업을 습관적으로 벌이는 노조에 맡겨 두는 게 나라경제에 큰 부담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한국의 노동조합도 살아남기 위해선 시대적 흐름을 읽어야 할 때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