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의 대승으로 끝난 팔레스타인 선거 후폭풍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KBS 용태영 특파원 피랍도 선거에서 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소속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세력이 잃어버린 입지를 되찾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동전문가로 최근 팔레스타인을 다녀온 최창모 건국대 히브리중동학과 교수(한국중동학회장)의 현장 르포를 싣는다. 지난 2월 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수도인 라말라를 방문했을 때는 공교롭게도 팔레스타인 자치의회가 개원하는 날이었다. 예루살렘에서 라말라로 통하는 길은 비교적 쉬웠다. 평소 같으면 까다로운 이스라엘 군인들의 철저한 보안 검색도 이날만은 예외였다.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체크 포인트에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모습은 일상의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라말라는 가자지구와는 달리 PLO 소속 파타흐당 지지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하마스는 대승을 거두었다. 체크 포인트를 건너자마자 낡은 택시를 잡아 탔다. 운전사 사미(33)의 첫 마디는 "하마스가 최고다"였다. "왜 하마스를 지지하느냐"고 묻자 "하마스는 우리의 진실을 이해한다"고 대답했다. 한마디로 하마스의 승리는 파타흐의 부패가 가져온 민심의 반란이었다. 민중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외교와 멋진 수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라말라의 고급 호텔에서 만난 몇몇 파타흐 지도부 고위 인사들은 아직도 선거 결과에 대한 견해가 달랐다. "파타흐의 패배는 선거제도의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동시에 채택한 이번 선거에서 파타흐는 너무 많은 수의 공천자를 내보내 표가 분산된 반면,하마스는 전략적으로 소수 공천으로 승부를 걸었다는 것이다. 낙선자에게 보낸 유권자의 표는 결국 사표(死票)가 돼 의석수를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낡은 카페에서 만난 한 청년에게 "하마스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슬람의 법에 따라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기대한다"고 대답했다. 하마스에게 '팔레스타인 독립을 향한 강력한 무장투쟁'을 기대할 것이라는 예상을 크게 빗나간 응답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슬람 국가 건설'이라기보다는 이슬람만이 대변해줄 수 있는 '하나의 가치'인 것이었다. 라말라에서 만난 한 여성은 '팔레스타인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을 비판했다. 가난하고 억눌린 생활 속에서도 빈부격차는 팔레스타인 독립만큼 심각한 문제다. 적어도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 하마스는 과격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들에게 하마스는 '민중신학'의 복음이자 '해방신학'의 출발이라고나 할까. 라말라 근처의 기독교 미션 스쿨에 다니는 한 팔레스타인 소녀는 "우리는 선거 전부터 하마스의 승리를 다 알았다"며 "선거권도 없는 우리들에게까지 하마스는 이미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며 환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이에 반해 예루살렘에서 만난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하마스의 등장을 걱정하고 있었다. 히브리대학의 한 젊은 교수는 "머리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구성된 하마스의 실체를 인정하지만 가슴으로는 아직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복잡한 심경을 솔직하게 피력했다. 그는 "하마스의 대 이스라엘 강경 투쟁 노선에 변화가 없으면 결코 중동평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기존 입장을 지키려 했다. 이스라엘 거리에는 어느덧 선거 광고판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지지율이 저조한 보수 우익 정당인 리쿠드당은 "리쿠드만이 하마스와 맞설 수 있다"는 구호로 기선을 잡아가고 있다. 현재 아리엘 샤론은 병세가 위독하다. 그러나 그가 창당한 중도 통합당인 카디마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거의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어 큰 이변이 없는 한 제1당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중동의 4월은 '함신(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미국의 입장처럼 '하마스는 중동평화에 걸림돌'이 될 것인지,아니면 러시아의 발표대로 '하마스야말로 중동평화에 기여할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다. 이 과정에서 PLO와 하마스 간 내부 권력 투쟁은 때로는 거칠게,때로는 비밀스럽게 이어질 전망이다. 그들의 투쟁으로 인해 외국 민간인들이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