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극비리에 이뤄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간의 회동에서 과연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청와대나 우리당측은 공식 브리핑 외에 "아는 바 없다"고 입을 닫고 있지만 회동의 성격을 감안하면 단순히 이 총리 거취문제 만이 논의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사안은 당장의 총리 교체보다도 어떻게 매끄럽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지방선거는 물론 여권의 진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향후 정국운영 기조와 관련한 깊숙하고도 밀도있는 의견교환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회동이 이병완(李炳浣) 비서실장만을 배석시킨 채 2시간 가량 사실상의 `단독회동'으로 이뤄진 점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특히 이번 회동이 당초 15∼16일께 이뤄질 것이라던 예상을 뒤엎고 귀국 당일로 앞당겨 이뤄진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사퇴 건의'를 준비중인 정 의장과의 회동 일정을 앞당긴 것 자체가 이미 사퇴 쪽으로 `결심'이 섰다는 정황으로 볼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날 회동은 단순히 당의 입장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기 보다는 `포스트 이해찬' 문제를 놓고 `의견교환'을 하는 자리의 의미가 강했다는 분석이다. 우상호(禹相虎) 대변인은 "대통령이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더라"며 "이렇게 빨리 결론내릴 줄은 미처 몰랐다"고 말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특히 이 총리 사퇴에 따른 후임총리 인선은 물론 분권형 책임총리제의 운영여부, 지방선거 전략 등 집권후반기 국정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놓고 심도있는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관측된다. 기획통으로 불리는 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이 총리 사퇴이후를 놓고 고민이 많으실 것이고 무엇보다도 여당 쪽의 의견을 많이 구하고 싶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는 여당과의 협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건"이라고 말했다. 우 대변인도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이 예전과는 달리 `오픈 마인드'돼있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고, 한 측근은 "앞으로 정치가 당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뜻을 전하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했다. 이날 회동은 이날 오전 9시30분 노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청와대 참모진에게 정의장과의 면담일정을 잡으라고 통보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 의장은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신월동 공부방 방문 일정을 오후 5시로 전격 연기했다는 후문이다. 정 의장은 오후 2시를 전후해 당 의장실에 들러 `보고 준비'를 최종적으로 마치고 청와대로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장은 이날 대통령과의 면담이 끝난 뒤 에는 우상호 대변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결과를 구술했다. 정 의장은 회동직후 신월동 공부방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부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에게 바닥의 민심과 의원들의 의견을 전달했고, 대통령께선 당의 의견을 깊이 있게 경청하고 당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수용하겠다고 했다"며 "다시 한번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집권여당으로서 자세를 새롭게 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책임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회동 사실이 극비리에 부쳐진 것은 그만큼 회동의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한 당직자는 "미리 알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며 "아무것도 소득없이 그냥 나왔다가는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분위기는 이날 정의장과의 회동을 전후해 미묘한 차이가 감지됐다. 노 대통령이 이날 오전 이 총리를 면담한 직후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체로 "하루 이틀안에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겠느냐"며 이 총리의 사의 수용여부가 금명간 결정될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침묵'이 계속된 탓인지 오후부터는 "대통령의 결정이 장기화될 수 있다", "결정 시점을 특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등 '혼선'으로 비쳐지는 서로 다른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정 의장과 면담이 시작된 오후 3시께 이르러 청와대 관계자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한 고위관계자는 "앞으로는 대변인으로 채널을 단일화할 것이므로 일절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한 핵심관계자는 "현재 민감한 시기이므로 뭐라 말할 수 없다"며 언급을 삼갔다.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이 비공개 면담이 한창 진행중이던 오후 3∼4시 사이 '총리거취'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결정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신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동행 취재한 기자들에게 "오늘중 발표할 것은 없으니 집에 들어가서 쉬라"는 말 대신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으면서도 "대기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김범현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