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적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이 14일 사설을 통해 한국의 경제 현실을 무시한 채 칼 아이칸의 담배회사 KT&G의 적대적 인수합병 기도를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신문은 아이칸이 많은 한국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그의 행동은 옳은 것이며 한국의 경영진들에게 `주주가치'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강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이칸은 KT&G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취득한 뒤 인삼사업부문을 분리하고 비핵심 부동산을 매각해 배당을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가 반응이 없자 독립적인 이사 선임을 시도했다. 아이칸은 이런 일련의 시도가 어려움에 봉착하자 KT&G 인수의지를 밝히며 한국의 규제당국이 부적절하게 정기주총 전자투표 접수를 앞당겨 마감함으로써 외국인 주주들의 의결권에 손상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의 언론은 아이칸에 대해 "꺼지라"고 외쳤고 규제 당국은 "우리는 적절하게 행동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신문은 KT&T 이사회의 행동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재벌문화'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며 한국은 아이칸식의 `무례한 주주운동'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에 따르면 2차대전 후 산업 주도 성장의 유산인 재벌문화는 진정한 기업문화의 창출을 저해했다. 최고경영자는 경영 자체보다는 족벌 관계를 위해 선임되고 거미줄 같이 복잡한 재벌의 구조는 극소수의 지분만으로 일가족이 거대한 기업을 지배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며 이로 인해 주주이익은 경시된다고 비판했다. KT&G가 재벌은 아니지만 역시 이런 기업 토양 속에 존립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신문의 주장이다. 신문은 또 필립스의 기업보고서는 230쪽에 달하지만 삼성전자의 기업보고서는 72쪽에 불과하다며 한국의 기업은 재무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한국어로 된 보고서는 자세하지만 외국인용인 영어 보고서는 부실해 외국인 주주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신문은 이런 형편없는 기업 사고로도 한국 기업이 고도성장을 한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우호적인 환경이 영원히 존속되지는 않을 것이며, 한국 경제가 개방과 성장을 지속하는 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케케묵은 경영을 하는 한국 기업들로부터 가치를 짜낼 더 많은 기회를 포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어 아이칸의 시도는 성공 여부를 떠나 세계 10위의 경제국인 한국의 기업 환경에 교훈을 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창섭기자 lc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