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4일 오전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이해찬(李海瓚) 총리와 면담을 갖는 등 `총리거취' 정국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노 대통령과 이 총리간 일주일여만의 만남은 통상적인 귀국인사 수준을 넘어 참여정부 2인자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관심 속에 그야말로 긴박하게 이뤄졌다. 노 대통령은 오전 9시30분 서울공항에 도착, 출영나온 청와대 이병완(李炳浣) 비서실장과 김병준(金秉準) 정책실장 등으로부터 `골프 파문' 등 국내상황에 대한 간략한 구두보고를 들었다. 이어 노 대통령은 헬기 편으로 청와대에 도착, 귀국 후 첫 일정으로 오전 10시께 청와대 관저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 총리를 대면했다. 12시간30분간의 긴 비행으로 쌓인 여독이 채 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국 최대현안과 맞닥뜨린 것이다.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이날 면담은 `귀국 인사를 겸한 티 타임'의 형식을 취했다. 이에 따라 이 총리는 물론 이병완 비서실장 등 청와대 수석.보좌관 등 참모진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청와대측은 이날 면담의 성격에 대해 "통상 대통령의 해외순방 이후 청와대에서 `귀국 인사'를 가져왔으며, 이번에도 그런 차원에서 자리가 마련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이 총리가 이 자리에서 단순히 귀국 인사를 주고받고, 아프리카 순방결과 및 부재중의 국정 사안 등에 대해서만 의견을 나누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 총리가 대통령과 면담에서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하지 않겠느냐"고 말해 이날 면담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이 총리의 거취 문제가 논의될 것임을 시사했다.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함께 하는 면담에서 이 총리의 거취 문제가 거론될 지, 노 대통령과 이 총리가 의례적인 `티 타임' 직후 별도의 자리를 갖고 거취 문제를 논의할지도 관심을 모았다. 이와 관련, 김만수(金晩洙)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과 총리의 별도 오찬이나 독대는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 총리가 노 대통령과 면담에서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진 만큼, 노 대통령이 이 총리의 거취와 관련해 어떤 언급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현재로선 노 대통령이 즉각적인 `사의 수용' 내지 `사의 반려' 등 양단 간의 결정을 하지는 않고 `심사숙고'의 시간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귀국 직후 `골프파문'의 전말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현재까지 청와대 참모들도 노 대통령의 `판단'을 돕기 위한 각종 보고를 정리하는데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총리와 면담 직후 이병완 비서실장,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 등으로부터 `골프파문' 이후 불거진 각종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 여론 추이 등을 보고받을 계획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시간 관계상 총리 면담 이후에나 이번 골프 논란과 관련한 사실관계 등에 대한 종합적인 보고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정수석은 이번 골프와 관련한 각종 의혹의 실체 및 판단에 대해 노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며, `내기 골프는 인정되나 로비 골프는 아니다'는게 그 요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수석은 "그동안 이 총리가 골프를 통해 로비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가 여러차례 밝혔었고, 내기 골프 등 다른 사안에 대해선 맞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거취문제가 중대고비를 맞은 이날 총리실에도 아침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총리는 평소보다 30분가량 이른 오전 8시께 정부 중앙청사로 출근했으며 예정대로 오전 9시에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이 총리는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오늘은 대통령께서 아프리카 정상외교를 끝내고 귀국하셔서 국무회의를 마치고 귀국 인사를 가야한다"며 "회의를 9시40분까지할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노 대통령과의 면담계획을 언급하면서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이 총리는 회의에서 농림부의 수입쌀 시판과 관련된 구두보고를 받고 "농민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게 잘 해달라"고 말하고, "대통령께서 아프리카 외교를 잘 마치고 오셨으니 외교부나 산자부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후속조치에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골프파문과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인사는 국무회의 참석에 앞서 이 총리의 사의 표명 가능성에 대해 "어떤 분인데 왜 말을 않겠느냐"라고 반문하며 사의 표명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그는 하지만 "사의를 표명한다고 하더라고 노 대통령이 수용할 지 여부는 대통령만이 아는 일"이라며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총리는 예고한 시간보다 5분가량 이른 오전 9시35분께 국무회의를 마치고 국무위원들과 함께 중앙청사 19층 국무회의장을 나서 곧바로 청와대로 향했다. 총리실 직원들은 평소보다 이른 오전 8시를 전후로 출근한 뒤 이 총리의 거취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된 표정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승호 김범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