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횡령이나 배임,분식회계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는 각급 법원의 부패범죄 전담재판부에 배당되고 양형도 대폭 상향 조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기업활동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법원 측의 이 같은 방침은 기업인들의 경영의욕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전국 5개 고등법원과 특허법원,18개 지방법원과 가정·행정법원의 수석 부장판사 29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수석부장판사 회의를 갖고,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엄단 의지를 재확인했다. 임성근 법원행정처 사법정책3심의관은 이날 '원칙이 구현되는 살아 있는 공판'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회사 운영과 관련된 거액의 업무상 횡령 또는 배임죄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유전무죄,무전유죄' 비판에서 벗어나려면 부패 범죄 전담부가 관련사건을 통합 처리해 일관성 있는 양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의 '부패범죄 전담재판부 설치 등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현재 서울고등법원 형사1,4부 등 부패범죄 전담 재판부가 담당하는 부패범죄 유형은 주로 공무원이나 금융기관 임직원의 뇌물수수 사건들이다. 대기업 경영진 등이 포함된 거액 횡령·배임사건은 일반 형사합의부에서 처리되고 있다. 특히 이들 사건은 피고인이 피해자 회사의 대주주 또는 창립자인 경우가 많아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나 피해 회복 등이 감안돼 비교적 관대한 판결이 선고돼 왔다. 회사돈 286억원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두산그룹 오너들과 계열사 임원 11명 전원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판결이 대표적 사례다. 이날 회의에서도 전국 수석부장판사들은 "화이트칼라 범죄를 부패범죄 유형에 포함시키고 모든 지방법원에 부패범죄 전담 재판부를 신설 또는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서는 또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전국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경우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양형은 대폭 올라갈 수밖에 없다. 최근 창원지법이 마련한 양형 기준에 따르면 종래 집행유예로 선고되던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범죄에 실형선고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의 이런 움직임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 일률적인 양형 기준을 마련,기계적으로 적용할 경우 적잖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출신의 한 변호사는 "기업인들은 생리적으로 수익극대화에 매달리게 되는 만큼 기업 사건은 특수성이 많다"며 "특히 대기업의 경우 중소기업과 비교해 거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금액만을 놓고 양형 기준을 일방적으로 마련할 경우 역차별이 초래돼 국가 경제적으로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5월31일 지방선거 재판은 반드시 소송 제기 후 1년 내 끝내기로 하는 등 선거 범죄 사건의 신속 처리 방안 등도 함께 논의됐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