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만 나오면 뭐든 다 하냐." "녹수의 물에서 노는 오리는? 탐관오리." "그렇게 눈이 멀어서… 볼 걸 못보고,어느 잡놈이 그놈 마음을 훔쳐가는 걸 못보고,그 마음이 멀어져가는 걸 못보고.그 마음 훔쳐간 잡놈도 불쌍하고…." '왕의 남자'(이하 왕남)가 한국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다고 한다. 종래 최고였던 '태극기 휘날리며'는 100일 만에 1174만명을 동원했지만 '왕남'은 70일이 안돼 1200만명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제작비 또한 '태극기…'가 190억원이었던데 비해 '왕남'은 60억원 정도라니까 이래저래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사회물도,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드는 멜로물도 아닌 사극이 이처럼 흥행 돌풍을 일으킨 요인은? 풀이는 많다. 광대같은 왕과 왕같은 광대라는 새로운 인물 해석,질투와 욕망이라는 인간 본성에 정치풍자를 곁들인 연출,외줄타기와 남사당 놀이라는 볼거리,마음을 울리는 대사까지. 영화는 주연배우 중 한 사람인 감우성(장생)이 직접 외줄을 타는 첫 장면부터 끝까지 조마조마한 가운데 웃고 울게 만든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임금 연산과 왕을 조롱할 배짱을 지녔으되 한낱 광대에 불과한 장생을 비롯,하나같이 연민을 부르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관객은 자신의 삶을 반추하게 된다.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바탕이 된 연극 '이'(爾,김태웅 작)도 뜨고 책도 잘 팔리는 가운데 뮤지컬도 만들어진다고 들린다. 게임도 나올 테고 해외시장 승부도 노릴 만할 것이다. 이게 문화콘텐츠다. 제대로 된 원작이 있고 어떤 장르로든 그걸 성공시키면 무수한 파생상품이 생겨난다. '왕의 남자'의 성공은 유행이나 공식을 좇지 않고 색깔있고 꼼꼼한 기획과 연출로 인간의 본성을 건드릴 때 관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음을 입증한다. 스크린쿼터 축소의 빌미로 이용되는 듯해 걱정스럽다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제 관객은 어느 나라 영화인가가 아닌 잘 만든 영화에 몰린다는 게 그것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