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이트 칼라' 범죄 엄단령을 내리며 법원의 변화를 주문한 이용훈 대법원장(사진)이 변호사 시절 화이트 칼라 범죄자를 변호하며 엄청난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대법원장이 수임한 형사 사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화이트 칼라 범죄인 것으로 집계됐다. 대법관을 마치고 2000년 9월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이 대법원장은 지난해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5년간 민·형사 소송 400여건을 수임해 60여억원을 벌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는 의뢰 건수가 많아 사건을 어느 정도 선택해서 수임할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한 소신이 투철했더라면 아무리 변호사 시절이라 하더라도 수임 사건의 절반 이상을 화이트 칼라 범죄로 채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임 사건 74%가 화이트 칼라형 본지가 국회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이 대법원장은 변호사로 일하던 2000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5년 동안 형사 사건 84건(중복된 3건 제외)을 수임했다. 이 가운데 횡령 뇌물 사기 배임 등 화이트 칼라형 범죄는 모두 62건으로 73.8%에 달했다. 자료에는 사건 수임 내역과 사건 번호가 기재돼 있다. 본지는 법원의 사건 검색시스템을 통해 이 자료에서 피고인과 범죄 내용 등을 추출해 냈다. 사건번호가 누락돼 판결을 확인할 수 없는 10건과 범죄명은 있으나 피고인의 신분이 불분명한 14건을 제외한 60건을 분석한 결과 정치인,공무원,기업 임원 등 사회고위층 인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횡령 뇌물 사기 등의 범행을 저지른 사건은 34건으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이 대법원장은 화이트 칼라 범죄 변호로 얼마나 벌었을까. 이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로 제청한 박시환 대법관의 예로 유추해 봤다. 박 대법관은 지난해 11월 국회 인사청문회 때 이 대법원장과 달리 수임사건의 실제 수임 금액이 첨부된 자료를 제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박 대법관은 2003년 9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59건의 형사 사건을 맡아 7억702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사실상 무료 변론 등으로 변호사비를 한푼도 받지 않은 11건을 제외하면 박 대법관은 한 건당 1600여만원을 벌었다. 이를 이 대법원장에게 대입했을 경우 이 대법원장은 5년간 형사 사건으로 13억4000여만원(84건.1600여만원)을 벌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임 사건 가운데 화이트 칼라 범죄가 절반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단순 계산으로 매년 1억원 이상을 화이트 칼라 범죄자를 변호해준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박 대법관의 예를 이 대법원장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박 대법관이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점을 감안할 때 이 대법원장의 수임료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변호사 업계의 시각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 중인 한 변호사는 "사건 종류나 변호사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법관 출신들이 대법원 사건을 싹쓸이 하고 있다"며 "수임료는 대법관 출신들이 일반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들보다 1.5배 이상 많이 받는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왜 '전관예우 근절'은 말못하나 이 대법원장이 변호사 때 수임한 74건(사건번호가 없어 대법원 사건인지 모르는 10건 제외)의 형사 사건 중 80%가 넘는 60건이 대법원 사건이었다. 형사 사건의 경우 의뢰인들이 대법원 최종심 단계에서는 대법관 출신들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대법원장도 이런 '전관'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대법원장이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을 강하게 비판했으나 전관예우를 문제삼는 것을 보지 못했다"며 "대법원장도 전관예우 대접을 받은 세대여서 전관예우 근절을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도 "사법부 불신의 주범은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한 관대한 처벌과 함께 전관예우에 있다"며 "사법개혁추진위원회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전직 판·검사에 대한 전관예우 예방책을 마련했지만 정작 법원 내부의 대책은 없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정인설·김현예·유승호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