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 2003년 말 AI가 유행했을 당시 닭과 오리 살(殺)처분에 참여했던 4명이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 AI바이러스인 H5N1에 감염됐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다행히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이러스가 거쳐간 무증상감염자이고 병으로 진전되지도 않았지만 우리나라도 더이상 AI의 안전지대라고 볼 수는 없게 된 셈이다. AI의 위험성이 얼마나 높은지는 지난 2003년 이후 발생한 174건의 인체감염 중 사망에 이른 경우가 94명에 달해 치사율이 50%를 넘고 있는 점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이 AI바이러스에 감염된 닭 오리 등이 발견되면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같이 사육하던 가금(家禽)류 전체를 즉각 살처분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AI바이러스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급속히 확산돼 나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오는 6월 개최 예정인 독일 월드컵이 제대로 열리지 못할 것이란 걱정까지 나오겠는가. 그나마 다행이라면 사람 대 사람으로 전염되는 경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AI바이러스가 변이(變異)를 일으켜 신종 전염병으로 번져 나간다면 전 세계에서 이로 인한 사망인구가 최소한 몇 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1918년),2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시아 독감(1957년) 등의 경우도 AI바이러스가 원인균으로 작용했던 상황이고 보면 이런 걱정은 결코 기우(杞憂)가 아니다. 따라서 방역 당국은 AI바이러스가 다시 상륙할 가능성에 대비해 만반의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현재 72만명분에 그치고 있는 치료제 타미플루의 확보물량을 500만명분 이상으로 대폭 늘리는 일이 시급하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국민의 10%에 해당하는 타미플루를 확보할 계획이고, 일본의 경우는 모든 인구에 공급가능한 물량을 비축할 예정이고 보면 더욱 그러하다. 아울러 철새들의 이동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가금류와의 접촉 루트를 차단해 AI바이러스 상륙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물론 감염사례가 발견될 경우의 즉각적인 신고체제와 감염지역의 격리·통제 방법 등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한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