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지대 소장본' 17배 분량…1859년께 제작 추정 "근대 한글문체 18세기 후반이전 자생적 발전 입증 자료"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ㆍ1737∼1805)이 쓴 『열하일기(熱河日記)』를 우리말로 번역한 필사본이 새로 발견됐다. 이 필사본은 열하일기가 장안의 화제가 됐던 18세기 말에 번역된 책을 19세기 말에 베낀 것으로 추정돼 당대 한글 문학가의 유려한 문체와 서민의 독서 풍토를 보여 주는 획기적 자료로 평가될 전망이다. 서울대 인문대 학장인 권두환 교수는 22일『연암열하일긔』라는 제목이 붙은 254쪽 9만2천여자 분량의 열하일기 한글 번역 필사본을 사진자료 형태로 공개했다. 권 교수가 일본 도쿄대에서 찾아낸 이 필사본의 분량은 지금까지 열하일기의 유일한 한글 번역본으로 알려졌던 현존 명지대 소장본의 17배에 이른다. 명지대본은 제2권만 남아 있어 전모를 알 수 없지만 극히 일부분을 발췌 번역했고 내용연결이 어색한 부분이 있었던 반면 이 사본은 상ㆍ하권 완본이고 작가의 생생한 경험 내용을 유려한 한글 문체로 고스란히 살린 `세련된 편역(編譯)'이라고 권 교수는 설명했다. 이 필사본은 경성제국대학과 도쿄제국대학에 재직했던 한국어 연구의 대가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ㆍ1882∼1944)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상권 150쪽, 하권 104쪽으로 돼 있고 각각의 표지에 `熱河記 乾(열하기 건)', `熱河記 坤(열하기 곤)'이라고 한문으로 적혀 있다. 연암이 중국을 다녀오면서 열하일기를 쓴 것은 1780년. 권 교수는 문체, 단어, 맞춤법 등 특징으로 미뤄 필사본의 저본(底本)은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 만들어진 한글 번역본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는 종이 재질, `기미년'이라고 명기된 연도, 함께 묶여 있는 소시집(小詩集)에 실린 시 등을 근거로 필사본의 제작 연대를 1859년으로 추정했다. 권 교수는 이 책의 필사 상태와 필체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이 필사본이 `공닌'이라는 자(字)를 가진 사대부의 집안에서 부인과 아들이 함께 베껴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필사본에 대해 주석을 달아 학계에 공개한 뒤 이에 대한 연구 저서를 이르면 연말께 출간할 계획이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 대명저 중 하나인 열하일기는 뛰어난 기행문일뿐 아니라 당시 국제 정세와 실학의 당위성 등을 다룬 문제작이었기 때문에 서민, 여성, 어린이 등 대중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 형태로 편역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지금까지 근대 문체는 개화기 이후 일본과 서구의 영향을 받은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 등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필사본은 아름답고 유려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근대 우리말 문체가 이미 18세기 후반 이전에 자생적으로 꽃 피웠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문화의 성숙도에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solat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