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8 16:03
수정2006.04.08 19:55
다윗과 골리앗이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성경엔 다윗이 지혜로써 골리앗을 물리쳤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만약 골리앗이 다윗보다 더 지혜롭고 날쌨다면? 당연히 골리앗이 승리했을 것이다.
증권가 최대 이슈인 KT&G와 미국의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 간 분쟁은 마치 다윗과,다윗보다 영리한 골리앗 사이의 싸움을 연상케 한다.
KT&G로선 어쩌다 이다지도 운 없는(?) 싸움에 말려들게 됐을까.
이에 대해 한덕수 부총리는 "(KT&G가) 경영을 잘해서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했으며,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아이칸으로부터) 도전을 받는 과정에서 KT&G 기업경영과 지배구조가 튼튼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적법한 절차로 M&A(인수·합병)가 이뤄졌다면 문제가 없다"는 재경부 관료의 언급도 있었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리지 못한 KT&G 현 경영진이 원죄이며,아이칸측이 KT&G를 집어삼키더라도 괜찮다는 뉘앙스를 내비친 셈이다.
과연 그럴까.
아쉽게도 이들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아이칸의 행보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후 막강한 월가의 금융자본이 어떻게 움직일지 앞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민정서법이 통하지 않을 FTA 체결후 KT&G나 포스코 삼성전자 KT처럼 외국인 지분이 많은 간판기업들이 대거 미 금융자본 손에 넘어가는,'설마'가 현실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로선 이번 KT&G 사태를 FTA 체결에 앞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먼저 생각해볼 건 정부가 외국기업엔 관대하고 국내기업은 꽁꽁 묶어두는 건 아닌지 하는 점이다.
최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산업과 금융자본간 분리 정책을 다시 고민할 시점"이라는 말을 했다.
참여정부의 주류 흐름으로 봐선 씨도 안먹힐 얘기겠지만,그런 분위기를 모를리 없는 윤 위원장이 이를 들고 나온 건 한국만이 유일한 대기업 출자총액제한이나 금융회사 보유 계열기업지분 의결권 제한 등을 풀지 않고,나아가 대기업이 은행 주인이 되는 걸 허용하지 않고선 미래는 어둡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경영권 방어장치에서도 역차별이 존재한다.
현재 KT&G 경영진으로선 동원할 만한 수단이 별로 없어 고민이다.
외국에선 적대적 M&A가 시도될 경우 황금주 행사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활용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법상 불가능한 까닭이다.
한ㆍ미 FTA에 앞서 국내기업에도 외국과 동등한 방어수단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이칸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기업지배구조에 정답이란 없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줄기차게 "소유분산이 잘된 기업이 좋은 기업이고 대기업들은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대기업을 압박해왔다.
KT&G는 몇 차례나 지배구조 최우수기업으로 뽑혔다.
하지만 소유분산이 잘된 게 거꾸로 외국 기업사냥꾼의 먹잇감이 되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기회의 평등' 대신 '결과의 평등'에 집착해 왔다.
이젠 국내 대기업에도 외국기업과 동등한 기회를 줘야하지 않을까.
대기업을 묶은 채 일자리가 늘고 양극화가 해소되길 바라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일 것이다.
강현철 증권부 차장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