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저의 일부이고, 저 또한 한국의 일부라는 생각을 늘 해왔어요. 할아버지, 어머니의 나라에서 연주하게 돼 기쁩니다."


원로 수필가 피천득(96) 선생의 외손자로, 현재 미국에서 촉망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21.하버드대 3년)가 한국 공연(16일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위해 한국에 왔다.


그는 피 선생의 딸인 물리학자 피서영(보스턴대 물리학과 교수) 씨와 남편 로먼 재키(MIT 물리학 교수) 씨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 현재 부모와 함께 미국 보스턴에 살고 있다.


하버드대에서 음악이론을,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최고 연주자 과정을 수학 중인 재키는 이번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한국 데뷔무대를 갖게 된다.


공연을 앞두고 13일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한국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왔지만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라 흥분된다"며 웃었다.


"열다섯 살 전까지는 한국에 거의 매년 왔어요. 지금은 학업이 바빠져 자주 못오지만요. 할아버지와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아주 가까운 사이에요."


피 선생의 '외손자 사랑'은 아주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키도 할아버지의 작품을 즐겨 읽는 '팬'이라고. 할아버지의 글 중에선 자신이 연주자여서인지 수필 '플루트 플레이어'가 가장 인상깊었다고 했다.


재키는 "만나는 한국 분들마다 모두 할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있어서 처음엔 굉장히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말했다.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건 네 살 때 부모의 친구가 선물로 준 장난감 바이올린에 흥미를 느끼면서부터였다.


물리학자인 부모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재키의 꿈을 막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특별히 뭘 강요하진 않으셨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되,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만 말씀하셨죠. 다행히 두 분 다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하셔서 공부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1997년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와 공식 데뷔무대를 가진 재키는 이후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본머스 심포니,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볼티모어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 시애틀 심포니 등 유럽과 미국의 유명 교향악단들과 협연하며 경력을 쌓았다.


2002년엔 미국의 유망 연주자들에게 수여되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음악대학이 아닌 하버드대를 택한 건 음악에 대한 좀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같은 하버드생인 첼리스트 장한나, 고봉인 등 한국 학생들도 잘 안다"며 "졸업 후엔 독주자와 실내악 연주자로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향 수석 객원지휘자인 아릴 레머라이트가 지휘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협연할 예정이다.


재키는 이 곡에 대해 어릴적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곡이기도 하다며 흐뭇해했다.


"일곱 살 때 할아버지 댁에 갔을 때 할아버지가 이 곡을 처음 들려주셨어요. 할아버지도 클래식 애호가였는데, 특히 이 곡을 제일 좋아하셨대요. 할아버지께서 제 공연을 보시는 게 이번이 처음이거든요.좋아하셔야 할텐데…(웃음)."


한국말은 못하지만 돌솥비빔밥, 불고기 등 한국 음식은 즐겨 먹는다는 재키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며 "앞으로 한국에서의 공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연문의 ☎02-3700-6300.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y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