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민 < 본사 주필 >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세금폭탄 때문에 온 국민이 좌불안석이다. 정부는 세금을 올리고,깎아주던 것을 더 이상은 깎아주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정치인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펄쩍 뛴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와 여당이 엇박자로 따로 놀고,그래서 참여정부의 정책 컨트롤타워가 아예 실종됐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조세부담률 인상을 언급했지만 며칠 뒤 기자회견에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논의해 보자는 것이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국세청은 116개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계획을 발표했고,뒤이어 재정경제부는 소주세 인상과 소수자 추가소득공제 철회 등 세금공세 정책을 잇달아 거론했다. 그러자 여당인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정부의 증세(增稅)방안에 대해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나섰다. 이 모양이니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밖에.여기에 야당은 한술 더 떠서 '감세안을 내놓겠다'고 공세에 나섰다. 한마디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입만 벌리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 당국자와 정치인들의 행태가 이러고 보면 정말 '가관(可觀)'이라는 표현이 걸맞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고도의 기만극이 아닌지 의심해보는 것도 그래서다.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는 대충 이렇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어 온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 게다가 저출산·고령화도 화급을 다투는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문제를 풀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돈이 모자란다. 그러니 세금을 더 거둘 수밖에 없다. 얼핏 생각하면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이는 정부 재정이 헛되게 새는 곳 없이 알뜰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국민 어느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예산을 집행하는 담당 공무원들이 더 잘 아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본질적 문제에 앞서 증세를 둘러싼 혼란을 가져온 정부의 행태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조세감면 축소가 옳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왜 맨 먼저 줄이는 대상으로 삼는 것이 하필이면 근로소득자인가. 소수자 추가소득공제는 비용공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여러 가족이 함께 사는 것 보다 소수가족의 경우 한 사람당 생활비가 더 많이 드는 만큼 추가로 손비로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이를 없애겠다는 얘기는 단독가구나 맞벌이는 바람직하지 않으니 징벌적으로 세금을 더 내야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것도 저출산대책이 아니냐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반면 농어민 영세사업자 등의 조세감면제도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 정부 생각이라고 한다. 이 또한 이치에 맞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 세제는 너무나 복잡하다. 내가 내야 할 세금이 얼마인지 알래야 알 방법도 없다. 갖가지 감면제도에 징벌적 중과세까지 난무하고 있는 탓이다. 목소리 큰 이익집단,표가 많은 사회계층이 으름장을 놓으면 원칙도 없이 세금을 깎아주다 보니 세제가 온통 누더기 상태다. 이를 바로잡는 일이 먼저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조세연구원의 중장기 조세개혁 방안도 새로운 게 없다. 몇 번씩 울궈먹던 레퍼토리다. 문제는 언제나 그 결과가 봉급 생활자들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으로 귀결됐다는 점이다. 아무리 용을 써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것이 '유리지갑' 근로소득자들이다. 국민들이 세금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부터 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어떤 원칙과 방법으로 재정을 확충하겠다는 구체적 방안도 없이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불쑥불쑥 내놓는 대책을 가지고 도대체 누구를 이해시키겠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