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재진 < 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 > 지난해 감세,국가채무 등 재정 관련 논쟁이 많았고 재정에 대한 관심도 많이 높아졌다. 정치인,학자들이 나라살림을 걱정하는 취지에서 재정 관련 문제를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6년부터는 작년과 같은 지엽적이고 선정적인 논쟁보다는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재정의 패러다임 변화를 감안한 심도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경제신문 1월10일자에 실린 현진권 아주대 교수의 '경제논리 아쉬운 재정정책'이라는 기고문을 예로 살펴보자. 현 교수는 "최근 재정이 세입 내 세출 원리를 포기하여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등 밑 빠진 독처럼 운영되고 있고,자선냄비식 복지지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반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어 내용을 살펴본다. 우선 현 교수는 "올해 예산은 과거와는 달리 편성단계부터 적자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정부의 균형 재정 의지가 퇴색됐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 재정은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적자로 반전된 이후 2006년까지 양극화 극복,성장잠재력 확충 등을 위해 부득이하게 일정부분 적자국채를 발행해 오고 있지만,통합재정 기준으로는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관리대상수지도 GDP 대비 ±1% 내외로 유지하고 있어 재정건전성의 문제는 크지 않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의 제고를 위해 5년 단위의 국가재정 운용계획 수립,세출구조조정 등 다각적인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둘째 국가채무가 참여정부 임기 절반 동안에 국민의 정부 기간보다 많이 증가했기 때문에 '밑 빠진 독'이라는 주장도 좀더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자. 참여정부 들어 늘어난 국가채무는 환율방어용으로 달러를 사들이기 위해 발행한 외평채(46조원)나 외환위기 때 조성한 공적자금의 회계상 국채전환(43조원),국민주택채권발행(13조원) 등 약 90%가 채권을 가지고 있거나 회계상 거래인 경우다. 실제 적자 재정운용에 따른 국채발행은 10%에 불과하다. 셋째 '복지지출 증가가 경제적 논리 없이 자선냄비식으로 추진됐다'는 지적도 비논리적이다. "복지지출이 13.4%나 늘어났기 때문에 비경제적"이라는 주장은 재정의 역할에 대한 고려 없이 제기된 주장이다. 오늘날 개방된 시장경제,민주화된 정치체제에서 복지를 무시한 경제정책은 불가능하며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보육 교육·직업훈련 등에 대한 지원이 불가피하다. 복지부문을 중심으로 한 재정의 역할 강화는 정부기능의 변화에 따라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추세다. OECD 국가 대부분이 중앙정부 재정의 50% 이상을 복지부문에 지출하는데 우리나라만 25% 수준을 계속 지출한다면 활력 있는 성장도,다같이 살기 좋은 나라도 기대할 수 없다. 최근 한 경제학 교수가 '앞으로 경제정책 수단 중에서 금융,환율보다는 불가피하게 재정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으며 그럴수록 재정 문제에 대한 이해와 논쟁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기고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외환위기를 막아내려다 보니 빚이 많이 늘었다. 적자재정도 운용하게 됐다. 왜 국가채무와 적자가 늘었느냐는 이제 다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논쟁의 수준이 어떻게 변화돼야 할지는 분명하다. 저출산,성장률 저하,양극화 등 우리사회의 현상을 분석하고 20∼30년 후의 장기 비전 하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재정의 역할과 정책방향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정부도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건전성 유지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언론과 학자들도 함께 보다 심도 깊은 고민을 해주기를 기대한다.